인천광역시 역사 장소
시·군을 골라 장소를 좁혀볼 수 있어요.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는지 함께 살펴보세요.
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부평역사박물관
전통시대부터 6·25전쟁까지, 한 지역의 모든 시대를 한 건물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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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캠프마켓·옛 인천육군조병창 역사권
한 땅이 무려 80년 동안 다른 두 나라의 군사기지로 쓰였다면, 그 땅에는 어떤 역사가 겹겹이 쌓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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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부평 지하호
'새우젓 굴'이라 불리던 동굴이, 사실은 일본군의 비밀 무기공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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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미쓰비시 줄사택
23개 동에 1,000명 넘게 살던 집들이, 지금은 왜 4개 동만 남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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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산곡동 영단주택
80년을 버텨온 노동자 주택 마을이, 도시 재개발 앞에서는 왜 결국 사라지고 말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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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애스컴시티·부영공원 역사권
'조병창'이라는 두 글자가 없었다면, 부평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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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굴포천 도시생활 변화권
부평의 젖줄이라 불리던 하천이, 어떻게 30년 넘게 도로 밑에 숨겨져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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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강화역사박물관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인돌 바로 앞에 박물관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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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강화 부근리 지석묘
53톤짜리 돌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옮기고 세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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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고려궁지
고려 조정은 왜 강화도 안에서도 성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이곳에 궁궐을 지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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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강화산성
고려 조정은 왜 몽골에 맞서기 위해 섬으로 도읍을 옮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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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광성보
1871년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은 왜 마지막까지 성을 지키다 전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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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갑곶돈대
프랑스 군대는 왜 하필 이 좁은 해협 앞에 상륙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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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전등사
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는 하필 산성 안 절 옆에 지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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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강화전쟁박물관
한 섬에서 벌어진 전쟁의 유물만 모아도 박물관 하나가 채워질 만큼, 강화도는 왜 이렇게 자주 싸움터가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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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검단선사박물관
아파트를 짓기 전 땅을 파 보니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 나왔다면, 그 땅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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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원당동 선사유적 이전복원지
3,000년 전 사람이 살던 집터를, 부수지 않고 통째로 옮겨 복원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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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검단신도시 선사유적 발굴역사권
신도시를 지을 때마다 계속 옛날 유물이 나온다면, 그 땅 밑에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역사가 숨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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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검단 서북부 선사생활문화권
돌을 갈아 도끼를 만들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한곳에 집을 짓고 눌러앉기 시작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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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검단 대곡동 지석묘군
검단 대곡동 지석묘군에서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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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김안정 묘 출토 묘비
김안정 묘 출토 묘비은(는) 누구를, 왜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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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계양산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쓰인 성이, 왜 한강 하구 쪽 산봉우리를 골라 지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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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계양산성박물관
우리나라에 '산성'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박물관이, 왜 하나밖에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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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부평도호부 관아
지금의 부평구가 아니라 계양구에 '부평'이라는 옛 행정 중심지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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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부평향교
병자호란으로 불타 없어진 학교가, 어떻게 지금까지 89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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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황어장터 3·1만세운동기념관
장날에 모인 600명의 장꾼들이, 하루아침에 만세 시위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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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봉일사지 삼층석탑
두 번이나 절을 잃은 탑이, 어떻게 지금까지 원래 있던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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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계산동 은행나무
관청 건물이 완공된 기념으로 심은 나무가, 600년이 지난 지금 초등학교 운동장에 그대로 서 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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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개항박물관
은행 건물 하나가 100년 넘게 이름을 세 번이나 바꾸며 살아남았다면,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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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일본의 한 은행이 외국에 처음으로 지점을 낸 곳이, 왜 하필 인천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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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한국근대문학관
물류 창고와 김치 공장으로 쓰이던 낡은 건물이, 어떻게 우리나라 유일의 문학 종합박물관이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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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답동성당
청일전쟁 때문에 공사가 멈췄던 성당이, 어떻게 130년 넘게 인천 시민 곁을 지켜올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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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청일조계지 경계계단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 건물 양식이 완전히 다르다면, 그 계단은 무엇을 나누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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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산 하나에 붙은 '수도국'이라는 이름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담겨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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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 공장이 있던 마을이, 왜 옛 우체국 자리에 박물관을 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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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문학산성
백제를 세운 형제 중 비류는 왜 하필 이 바닷가 산에 도읍을 정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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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문학산역사관
인천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있었던 나라 이름이, 지금 구청 이름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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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도호부관아
왕비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승격된 도시의 관청이, 왜 두 산 사이에 자리 잡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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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향교
행정구역이 인천에서 부천으로 바뀌자, 향교의 이름까지 함께 바뀌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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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학산서원 터
숙종이 직접 이름을 내려준 서원이, 어떻게 터만 남기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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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삼호현 고갯길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이 가족을 향해 세 번 크게 외치고 넘었다는 고개가, 지금도 그 이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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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문학산 제의유적 터
산꼭대기에 세운 제단이, 왜 하필 바다를 향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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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소래역사관
생태, 어업, 염전, 철도 — 한 동네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네 가지 주제가 모두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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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대부분 암나무가 유명한데, 800년 된 이 나무는 왜 수나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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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소래철교
기차가 다니던 다리를, 사람들이 자꾸 무단으로 건너다니자 아예 사람 다리로 바꿔버렸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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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소래습지 옛 염전 역사권
갯벌 진흙탕이었던 땅이, 어떻게 60년 넘게 전국 최대 소금 생산지가 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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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논현포대 터
서양 배가 두려워 만든 포대가 여러 곳에 있었는데, 왜 지금은 이곳 하나만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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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장승포대지
장승포대지에서 남동구의 어떤 역사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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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소래포구 협궤철도 생활문화권
소금을 실어 나르던 철도역이, 어떻게 새우 냄새 가득한 포구로 완전히 바뀌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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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백령 중화동교회
우리나라에 성경이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 서울이 아니라 서해의 작은 섬이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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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심청각
효녀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바다가, 지금도 이 언덕 위에서 망원경으로 보인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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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백령 진촌리 패총
굴과 섭조개 껍데기가 잔뜩 쌓인 언덕이, 어떻게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생활을 알려주는 증거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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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연평도 안보교육장
휴전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이 북한의 직접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이 작은 섬에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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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연평도 피폭건물·평화공원 기억권
포탄에 부서진 집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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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해군 영흥도 전적비
해군 영흥도 전적비은(는) 누구를, 왜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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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덕적진 터
덕적진 터은(는) 옛날 어떤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곳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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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녹청자박물관
고려청자와 이름은 비슷한데, 왜 '녹청자'는 훨씬 덜 알려져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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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
가마를 똑바로 짓지 않고 일부러 비스듬하게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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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학자를 상징하는 나무가, 어쩌면 홍수에 떠내려와 우연히 이 자리에 뿌리내렸을지도 모른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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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류사눌 묘
세종대왕의 음악을 정리한 사람 중 한 명이, 왜 인천 서구에 잠들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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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숙의 문씨 묘
묘가 있던 산이 통째로 없어지자, 후궁의 무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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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검암경서동 녹청자 생활문화권
화려한 고려청자를 쓸 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럼 어떤 그릇에 밥을 먹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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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심즙 신도비
심즙 신도비은(는) 누구를, 왜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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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영종역사관
공항이 들어서며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 섬의 옛 모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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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영종진
'제비가 많은 섬'이라는 뜻의 '자연도'가, 왜 지금은 '영종도'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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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중산동 고인돌
고등학생들이 우연히 발견한 돌덩이가, 어떻게 청동기시대 무덤이라는 것이 밝혀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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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운남동 고인돌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무덤이, 지금은 신석기시대 마을 유물과 나란히 전시되고 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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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용궁사
그물에 세 번이나 다시 걸린 불상을, 어부는 결국 어떻게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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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두경승 장군 묘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장군이, 왜 마지막에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쫓겨나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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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삼목도 선사주거지(운서동 유적)
삼목도 선사주거지(운서동 유적)에서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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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능허대지
고구려 땅을 지나갈 수 없었던 백제 사신들은, 중국에 어떻게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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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원인재
손녀 세 명이 모두 왕비가 된 사람이 있다면, 그 집안은 어떻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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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광역시립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이, 자신을 만든 지 겨우 4년 만에 전쟁 포격으로 불타 없어졌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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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도시역사관
기차가 서던 작은 역이, 어떻게 인천 전체의 도시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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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인천상륙작전기념관
전쟁의 흐름을 통째로 바꾼 작전을 기념하는 건물이, 왜 삼각형 두 개를 겹친 모양으로 지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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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흥륜사
산 이름과 절 이름이 경치 때문에 함께 지어졌다가, 전쟁으로 340년 동안 폐허로 남았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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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백제사신길·능허대 교류역사권
육지 길이 막힌 나라가 외교를 이어가려면, 결국 바다로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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