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유교 문화유산
학산서원 터

숙종이 직접 이름을 내려준 서원이, 어떻게 터만 남기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학산서원은 1708년(숙종 34) 인천 부사를 지낸 이단상(1628~1669)을 기리기 위해 문학산 북쪽 기슭에 '인천서원'으로 세워졌고, 같은 해 숙종으로부터 '학산(鶴山)'이라는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됐다. 이후 여러 문인을 배출했으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정리 정책으로 헐려 터만 남았고, 훗날 문학터널 공사로 흔적을 찾기 더 어려워졌다. 지금은 문학터널 북쪽 입구에 2004년 세운 표지석만 있으며, 2009년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터에 꽃과 나무를 가꾸고 돌담을 쌓아 왔다.
왕이 직접 이름을 내려준 서원조차 정책 하나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문화유산이 국가 정책에 따라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문학터널 북쪽 입구의 학산서원 터 표지석(2004년 건립)
- 2009년부터 시민들이 가꿔온 꽃·나무·돌담
- 1871년 서원 철폐 정책을 설명하는 안내
- 이단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는 유래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이단상
- 관련 사건: 서원 철폐령(1871)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학산서원 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학산서원 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학산서원 터의 옛 역할을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학산서원 터은(는) 미추홀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학산서원 터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학산서원 터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