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 이야기를 찾아볼까요?
안산과 광양, 두 지역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살펴보고 다른 지역 이야기와 비교해 보세요.
안산 이야기 (16편)

잿머리 성황제 이야기
옛날 바닷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폭풍을 만나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서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 줄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잿머리에는 김부대왕의 부인 홍씨 부인과 장모 안씨부인을 모시는 성황당이 있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빌며 제사를 올려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잿머리 성황제는 안산 성곡동의 중요한 마을 공동체 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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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왕후와 소릉 이야기
조선의 문종 왕비였던 현덕왕후는 단종의 어머니였습니다.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은 뒤 세상을 떠났고, 안산 목내동에 소릉이라는 이름의 능이 마련되었다고 전합니다. 훗날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자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세조를 꾸짖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뒤 세조의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이를 현덕왕후의 한과 연결해 생각했습니다. 이후 소릉을 옮기는 과정에서도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현덕왕후의 원한과 신비로운 힘을 보여 주는 전설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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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포동 효녀와 두꺼비 이야기
옛날 성포리 해안가에 어부 아버지와 효녀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부엌에 두꺼비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마음씨 착한 효녀는 두꺼비가 불쌍해 매일 먹이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마을에서는 제사를 지낸 뒤 오래된 지네에게 사람을 바치는 무서운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해 효녀가 제물이 될 차례가 되었습니다. 효녀가 지네가 사는 곳으로 가자, 그동안 보살펴 주었던 두꺼비가 나타나 지네와 맞서 싸웠습니다. 두꺼비가 지네를 물리치고 효녀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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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 설화
안산의 노적봉은 산 모양이 마치 곡식을 높이 쌓아 놓은 노적가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합니다. 옛사람들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산의 모습을 보며 이곳에 곡식이 가득 쌓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노적봉이라는 이름에는 풍요롭고 넉넉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노적봉은 성포동의 대표적인 산과 공원으로 시민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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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낭굿 유래 이야기
옛날 마을 사람들은 마을 어귀나 고갯길에 서낭당을 세우고 마을의 평안과 사람들의 안전을 빌었습니다. 서낭굿은 이런 마을의 공동 신앙과 연결된 행사였습니다. 안산에서도 서낭굿의 유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함께 제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나누면서 마을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그래서 서낭굿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온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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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배미놀이 이야기
옛날 둔배미마을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며 살았습니다. 바다로 떠나는 어부들이 무사히 돌아오고 많은 고기를 잡기를 바라는 마음은 마을 사람 모두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띄우기 전과 고기를 잡고 돌아온 뒤에는 함께 노래하고 놀이를 하며 만선과 안전을 빌었습니다. 이 마을의 공동체 놀이가 오늘날 둔배미놀이로 이어져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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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기노래와 어부들의 이야기
안산 서해안 마을에서는 계절에 따라 어부들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았습니다. 배가 떠날 때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어부들이 무사히 돌아오고 배에 물고기가 가득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때 부르던 노래가 배치기노래입니다. 노래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바다로 떠나는 사람과 기다리는 가족을 이어 주는 마을의 약속 같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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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곡당산 산신제 이야기
옛날 팔곡동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둘러싼 산과 당산에 신령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큰일이 생기거나 한 해의 평안을 빌 때 당산에 모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마을의 어른들은 제사 준비를 하고, 사람들은 함께 음식을 마련하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팔곡당산 산신제 이야기는 자연과 마을 공동체가 이어져 있던 옛 모습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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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읍성과 수암마을 이야기
옛 안산의 중심에는 관아와 성곽이 있었고, 지금의 수암동 일대가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 안에서는 고을을 다스리는 일을 하고, 주변 마을 사람들은 장을 보거나 필요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오갔습니다. 지금도 안산읍성과 관아지의 흔적을 통해 옛 안산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마을을 이루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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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 은행나무와 인조의 전승
풍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요.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가는 길에 풍도에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지역 전설로 전해진다. 이 내용은 지역에 전해진 옛이야기예요. 실제로 일어난 역사 사실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사람들이 어떤 장소와 이야기를 오래 기억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해요. 지도에서 풍도의 위치를 찾아보고, 안산시의 다른 장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이름이나 이야기가 있는지 비교하면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이 지역마다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 찾을 수 있어요. 자료에 ‘전해진다’고 적힌 부분과 문헌으로 확인되는 내용을 구분해서 읽어 보는 것도 중요한 탐구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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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과 샘골강습소 이야기
샘골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최용신이 샘골강습소에서 농촌계몽과 교육 활동을 펼친 내용이 안산시 지역사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지역의 공식 기록이나 공공 향토자료에서 확인되는 변화와 생활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지도에서 샘골의 위치를 찾아보고, 안산시의 다른 장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이름이나 이야기가 있는지 비교하면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이 지역마다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 찾을 수 있어요. 자료에 ‘전해진다’고 적힌 부분과 문헌으로 확인되는 내용을 구분해서 읽어 보는 것도 중요한 탐구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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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동에 채록된 구비설화
반월동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요. 반월동향리지는 반월동 주민 사이에 전해진 구비설화를 별도 장으로 기록한다. 이 내용은 지역에 전해진 옛이야기예요. 실제로 일어난 역사 사실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사람들이 어떤 장소와 이야기를 오래 기억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해요. 지도에서 반월동의 위치를 찾아보고, 안산시의 다른 장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이름이나 이야기가 있는지 비교하면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이 지역마다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 찾을 수 있어요. 자료에 ‘전해진다’고 적힌 부분과 문헌으로 확인되는 내용을 구분해서 읽어 보는 것도 중요한 탐구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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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동의 옛노래
반월동에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남아 있어요. 반월동향리지는 지역에서 전해진 옛노래를 별도 장으로 정리해 마을의 생활문화를 보여 준다. 이런 기록은 옛날 사람들이 어디에서 만나고, 일하고, 놀고, 서로 도왔는지를 생각하게 해 줘요. 지도에서 반월동의 위치를 찾아보고, 안산시의 다른 장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이름이나 이야기가 있는지 비교하면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이 지역마다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 찾을 수 있어요. 자료에 ‘전해진다’고 적힌 부분과 문헌으로 확인되는 내용을 구분해서 읽어 보는 것도 중요한 탐구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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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동 이름에 남은 지역 기억
초지동의 이름과 장소를 살펴볼까요? 안산문화원 자료는 초지동의 지명유래를 별도 글로 다루어 지역 이름의 내력을 기록했다. 지명은 산, 강, 들, 마을의 모습이나 사람들이 살아온 기억과 이어지기도 해요. 다만 이름의 유래가 여러 가지로 전해질 때에는 어느 하나를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아요. 지도에서 초지동의 위치를 찾아보고, 안산시의 다른 장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이름이나 이야기가 있는지 비교하면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이 지역마다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 찾을 수 있어요. 자료에 ‘전해진다’고 적힌 부분과 문헌으로 확인되는 내용을 구분해서 읽어 보는 것도 중요한 탐구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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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신공업도시가 만들어진 과정
반월신공업도시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안산시사는 한적한 해안 농어촌 지역이 계획된 공업도시로 변화한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다. 이 내용은 지역의 공식 기록이나 공공 향토자료에서 확인되는 변화와 생활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지도에서 반월신공업도시의 위치를 찾아보고, 안산시의 다른 장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이름이나 이야기가 있는지 비교하면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이 지역마다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 찾을 수 있어요. 자료에 ‘전해진다’고 적힌 부분과 문헌으로 확인되는 내용을 구분해서 읽어 보는 것도 중요한 탐구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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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관이 닿았다는 우물, 관우물
경기도 안산 목내동에는 관우물이라는 우물 자리가 남아 있어요. 이곳은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에요. 훗날 왕이 된 세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현덕왕후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왕후를 모셨던 곳을 옮기는 과정에서 관이 바다에 떠내려가게 되었다고 해요. 오랫동안 파도를 따라 떠돌던 관은 마침내 한 농부의 도움으로 양지바른 언덕에 묻히게 되었대요. 훗날 사람들은 왕후를 남편인 문종의 곁으로 다시 모셨고, 관이 처음 닿았던 바닷가 자리에는 우물이 생겼어요. 사람들은 왕비의 관이 닿았던 자리라 하여 이곳을 관우물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해요.
읽어보기 →광양 이야기 (13편)

궁기마을의 전우치 이야기
옛날 광양 태인리에는 궁터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에 도술로 이름난 전우치가 궁궐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전우치는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를 바로잡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어느 고을의 수령이 백성을 심하게 괴롭히자 전우치는 궁기마을에 궁을 짓고, 여러 고을에서 곡식을 모아 어려운 백성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전우치가 떠난 뒤 궁궐은 사라지고 궁터만 남았다고 하여 이곳을 궁터마을이라 불렀고, 지금의 궁기마을이라는 이름과 연결해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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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마을 범바위 전설
고려 중엽, 호암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녁이면 한 호랑이가 할머니 곁에 와서 말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마을에 도둑이 들면 크게 울어 알려 주었고,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가뭄이 들 때도 울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호랑이를 마을을 지켜 주는 존재처럼 여겼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호랑이는 며칠 동안 울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살던 집 뒤에는 호랑이 머리 모양의 큰 바위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범바위라고 부르고 제를 올렸으며, 마을 이름도 호랑이 ‘호(虎)’와 바위 ‘암(岩)’을 써서 호암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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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의 의거
전쟁 때 광양 쪽으로 적군이 쳐들어오자 우리 군사들이 섬진강 앞까지 밀려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을 건널 배가 없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강에서 두꺼비 수백 마리가 나타나 마치 다리처럼 이어졌다고 합니다. 군사들은 그 두꺼비들을 밟고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뒤따라오던 적군이 강을 건너려 하자 두꺼비들이 모두 물속으로 들어갔고, 적군은 강에 빠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승에서는 두꺼비와 섬진강의 이름을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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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사 창건전설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절을 세우려는 곳에는 큰 못이 있었고, 그 못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선국사가 활을 쏘자 청룡은 하늘로 올라갔지만 백룡은 바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백룡도 화살을 맞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후 절이 세워졌지만 백룡이 품은 원한 때문에 훗날 불이 나 절이 망했다는 전승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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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의 삼정과 월애 이야기
광양에서는 예부터 백운산에 세 가지 특별한 기운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봉황의 기운, 하나는 여우의 기운, 또 하나는 돼지의 기운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봉황의 기운을 받은 인물로 최산두를, 여우의 기운을 받은 인물로 월애를 이야기합니다. 전승 속 월애는 고려 때 옥룡 초암마을에서 태어나 뛰어난 미모와 지혜로 이름을 알렸고, 몽고 왕실과 관련된 자리에서도 고려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초암마을에 월애와 관련된 이야기가 남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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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명당 이야기
약 300년 전 남만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먼 길을 오가며 살았습니다. 그는 낮에는 봉강면 부저리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밤에는 험한 고개를 넘어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어느 날 길에서 큰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호랑이의 목에는 비녀가 걸려 있었고, 만갑은 두려움을 참고 그 비녀를 빼 주었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만갑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행동했고, 만갑은 그것을 아버지의 묘를 쓸 좋은 자리로 알려 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묘를 범명당 또는 효자묘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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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실 물맞이골 전설
구룡실에는 작은 폭포처럼 생긴 물맞이골이 있었고, 그 물에 몸을 맞으면 효험이 있다고 사람들이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상을 당한 사람이 몸이 아파 물을 맞으러 갔을 때 물이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위쪽으로 올라가 보니 큰 뱀이 물길을 가로막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부정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로 물의 효험이 사라졌다고 전합니다. 그래도 물맞이를 하려는 사람은 며칠 동안 비린 음식을 피하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뒤 찾아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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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리 쌍두마을 풍치나데 전설
옛날 쌍두마을에는 박씨 집안이 큰 부자로 살았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스님들에게 잘 베풀지 않았고 오히려 괴롭혔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도사가 찾아와 좋은 묘자리를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박씨들이 도사의 말을 믿고 묘를 옮기자, 원래 묘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고 집안의 형편도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좋은 자리를 둘러싼 옛사람들의 믿음과 마을에 전해지는 풍수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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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마을 효자전설
입암마을에 정씨가 살았는데 어머니가 병이 들어 숭어고기를 먹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정씨는 겨울 냇가로 나가 얼음에 구멍을 내고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숭어가 얼음 위로 튀어 올랐고, 정씨는 숭어를 잡아 어머니에게 먹였습니다. 어머니의 병이 나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효심을 기려 소자문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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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마을 물바위 전설
고려가 망한 뒤 고려의 멸망을 슬퍼한 바위들이 어디선가 걸어서 광양으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마을 앞에서 빨래하던 사람들이 바위들이 울면서 걸어오는 것을 보고 ‘바위들이 우는구나’라고 말하자, 바위들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바위들이 남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광양시 자료에는 현재 그곳의 바위들이 지석묘로 보인다는 편집자 주석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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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계산 전설
백계산 절터 앞에는 옛날 큰 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선국사는 그 못을 메워 절을 널리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눈병이 난 사람은 못에 숯을 넣으면 낫는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사람들이 숯을 가져와 넣으면서 못이 메워졌다고 전합니다. 이후 백계사에 백씨 성을 가진 승려가 들어오면 절이 망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실제로 백씨 성을 가진 승려가 머문 뒤 큰불이 나 절이 타버렸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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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 팽나무 전설
장동에는 500년이 넘었다고 전해지는 큰 팽나무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무렵 밤에 이 나무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 모였을 때 왜병이 마을로 쳐들어왔고, 왜병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격을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물러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찾아온 왜병들이 나무를 베려고 하자 가지가 떨어져 그들을 덮쳤다는 전승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후 이 나무를 당산목으로 모시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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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리 용소 전설
옛날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길을 떠났습니다. 밤이 깊고 길은 험해 길을 잃은 선비는 큰 바위 옆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바위는 용소 바위였다고 합니다. 꿈속에 큰 용이 나타나 바위를 지나 아래 물길로 가면서 둑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선비에게 과거시험 문제를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잠에서 깬 선비는 시험을 보러 갔고 결국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용소 또는 용무쟁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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