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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元植

元植

1887. 4. 18 ~ 1924.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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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元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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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회령(會寧)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회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간도국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회령독판부 연통제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7년 4월 18일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팔을면(八乙面) 창효동(彰孝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춘약(李春若)·이춘암(李春岩)이다. 북간도 옌지현(延吉縣)에 본부를 둔 간도국민회가 1919년을 기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로 통합되고, 본부 외에 5개의 지방 총회 및 52지회를 두어 활동을 본격화하였다. 1920년 (음)5월 15일 회령군 팔을면 금생동(金生洞) 최방덕(崔仿德) 집에서 여러 동지와 공모하여 금생동에 국민회 지회 설치를 협의하였다. 4, 5일 후 2차 회의에서 오순준(吳舜濬)을 지회장으로 선임하였다. 6월 20일 3차 회의에서 국민회 통신국장 박용훈(朴龍勳)이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안정근(安定根)의 지령을 받아 회령독판부 설립을 종용한다는 말을 허익근(許益根)이 전달하였다. 6월 23일 정희용과 나성호를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륭현(和龍縣)에 있는 박용훈에게 파견하기로 결의하였다. (음)7월 10일 정희용(鄭熙溶)과 나성호(羅聖鎬)가 귀국하여 전말을 보고하고자 창효동 정희용 집에서 4차 회합을 하였다. 이 회합에 참여해 독판부 설립에 동의하였다. 오중묵(吳重黙)이 독판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연통제 조직을 통해 회령의 관청, 은행, 친일파 가옥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권총과 탄환, 폭탄 등 무기를 밀수하는데 공조하다가 회령경찰서 일제 경찰에게 연루자로 발각되어 1920년 11월 20일에 붙잡혔다. 1921년 11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폭발물취체벌칙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검사의 항소로 1922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얼마 되지 않은 1924년 4월 3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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