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곤
尹興坤1880 ~ 1910. 10. 3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산남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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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95) 경상북도 청하군(淸河郡, 현 포항시 청하면) 소천면(小川面) 송천동(松川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0년 당시 30세인 것으로 보아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산남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제2대 대장 정환직(鄭煥直)이 이끄는 산남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김수곡(金水谷)·김일원(金日元) 등과 함께 백 수십 명의 동료들을 지휘하여 군자금 확보와 일제 침략 기구 및 그 앞잡이들을 처단하는 데 앞장섰다. 1907년 10월 29일 경북 흥해군(興海郡) 읍내로 들어가 흥해 우편취급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이치하라(市原爲太郞) 소장 등을 처단하고, 그곳에 보관된 300여 원을 군자금으로 확보하였다. 이어서 인근에 위치한 경무분파소를 비롯한 13채의 집을 불태웠다. 11월 3일에는 신령군(新寧郡) 읍내로 들어가 경무분파소를 습격하여 다량의 총기를 확보하고, 분파소와 순검 박재진(朴在鎭)의 집을 불태웠다. 이튿날인 4일에는 의흥군(義興郡) 읍내로 들어가 그곳 경무분파소에 보관된 총기 수백 정을 확보하고 분파소와 순검 주택 3채를 불태웠다. 11월 15일에 다시 흥해읍으로 들어가 그 곳 분파소 순사들을 처단하고, 군청과 7채의 집을 불태웠다. 이튿날 다시 청하(淸河) 읍을 습격하였으나 한국인 순검 김학윤(金學潤)의 의복과 소지품 일부를 확보하는데 그쳤다. 1907년 12월 산남 의병부대 대장 정환직이 일본군에 붙잡혀 대구로 이송되던 도중 영천(永川)에서 총살되어 사망하자 남은 장령들은 1908년 이후 영천 보현산(普賢山) 거동사(巨洞寺)에서 최세윤(崔世允)을 산남 의병부대 제3대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때부터 여러 장수들을 각 지역으로 파견하여 유격전을 펼치는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08년 6월 4일 영덕군 외남면(外南面) 장사리(長砂里)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확보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1910년 7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0년 8월 22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강도, 방화, 살인죄 등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20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고등법원에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7일 상고가 기각되었다. 1910년 10월 31일 김수곡·김일원 등과 함께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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