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이
尹學伊187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돌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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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진보면(眞寶面)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8년 당시 36세인 것으로 보아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 경북 진보군 동면(東面) 금조암동(金鳥巖洞)에 주소를 두었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신돌석(申乭石)이 1906년 3월 13일 영덕(盈德)에서 창의한 이후 경북·강원지역의 해안 지대와 일월산(日月山)·백암산(白巖山)·동대산(東大山) 등 산간지대를 오르내리며 유격전을 전개하던 무렵인 1908년 (음)5월 28일 신돌석 의병부대의 의병 10여 명의 방문을 받고 의병부대에 투신하였다. 먼저 동료 의병 신낙선(申洛善) 등 50여 명과 함께 울진군 황정촌(黃亭村)에 머무를 때, 부근 마을에서 쌀 5말을 군량미로 징수하였다. 같은 해 7월 영해군(寧海郡) 오기동(烏基洞)에서 유진할 때 군량미로 쌀 7말, 같은 달 진보군 동면(東面) 수구동(水九洞)과 영양군 석보(石保) 등지를 오가며 쌀 16말을 징발하여 군량미로 사용하는 한편, 진보 읍내의 권탑동(權塔洞)의 집에 가서 돈 70냥을 징수하였다. 특히 1908년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가 돌아온 뒤 평해(平海)·영양(英陽)·울진(蔚珍)·봉화(奉化) 등지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같은 해 7월 10일 산 속에 은신하여 경계를 펴던 중 진보에 주재한 순사들이 공격해 오는 모습을 보고 산곡(山谷)으로 피신하였다가 귀향하였으나 곧 붙잡혔다. 1908년 9월 28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던 중, 1910년 9월 5일 신낙선 등과 함께 경술국치에 따른 대사령(大赦令)으로 약 2년 만에 풀려났다. 자료의 한계로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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