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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謙浩

謙浩

1895. 8. 12 ~ 194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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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謙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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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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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흥무관학교
  • · 서로군정서
  • · 대한민국임시정부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창수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5년 8월 12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오촌동(梧村洞)에서 이규달(李逵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호는 해강(海岡)이며 이명은 이석(李石)이다. 1910년대 말에 독립운동을 위해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1919년 류허현(柳河縣)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20년 상부의 명에 의해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 요원이 되어 군자금 모집 임무를 띠고 국내로 들어왔다. 같은 해 9월경 경찰에 붙잡혀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된 후 7개월 간 구금 상태로 조사받았다. 혹독한 고문에도 끝까지 함구하여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되어 1921년 3월 풀려났다. 1922년 9월 영해면(寧海面)에 남효상(南孝相) 등과 함께 ‘유도진흥회’(儒道振興會)의 이름으로 태화학원(太和學院)을 설립하여 교사로 재직하며 민족의식 고취에 주력하였다. 1923년 (음)9월 대구부 시장통(市場通)의 신흥무관학교 동창생 신형섭(申亨燮)의 집에서 남만주의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특파원으로 군자금 모집 차 밀입국한 안동(安東) 출신 이덕숙(李德淑)을 소개받았다. 1924년 5월 중순에 이덕숙이 권총 2정과 실탄 100발 및 경고문·권고문 등을 갖고 집으로 찾아오니, 휴대품은 오촌동의 문중 서실(書室)인 명루암(蓂樓菴)의 다락에 숨겨두고 이덕숙은 마을 안 서당에서 기거토록 하였다. 그리고 군자금 모집 계획을 상의한 바에 따라 5월 25일 태화학원에서 인근 병곡면(柄谷面) 송천동(松川洞)의 권영탁(權寧鐸)에게 이덕숙을 만나보도록 권하였으며, 처남인 창수면 인량동(仁良洞)의 부호 김상락(金相洛)에게도 군자금 300원을 내도록 설득하면서 불응할 경우에 생길지도 모를 일을 같이 언급하였다. 1924년 6월 5일 이덕숙이 창수주재소 일본인 순사의 검문과 연행에 불응하고 격투를 벌이다 권총을 쏘며 도주해버리니 바로 수사가 개시되었고, 연루 사실이 드러나 붙잡혀갔다. 같은 달 17일 송국되어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협박 등으로 기소되었고, 같은 해 8월 7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5년 3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고 만기 출옥하였다. 1930년대에 만주에 이상촌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활동하다 발각되어 경찰에 잡혀 들어가 1년 7개월간 구금되어 있었다 한다. 1942년 예비검속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건강 악화로 석방된 후 서울 흥국사(興國寺)에서 요양 중 8월 29일 사망하였다. 1965년 창수에서 영해로 가는 큰길가의 원구리(元邱里)에 ‘의사’(義士)로 추증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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