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敬萬
敬萬1897. 2. 4 ~ 1983. 10.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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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2월 4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君) 가창면(嘉昌面) 행정동(杏亭洞)에서 아버지 이화목(李和睦)과 어머니 장금공(張今功)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월성(月城)이다. 1915년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를 졸업하고 경북 경산(慶山)에 있는 기독교 학교의 교사를 역임하였다. 1920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이현수(李賢壽)에게 임시정부와의 통신 연락을 임무를 부여받고 군자금과 독립공채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현수는 달성군 출신으로 임시정부 재무부 서기를 역임하였다. 1920년 8월 독립공채 모집, 국내 연락기관 설치와 미국 의원단 내한을 계기로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임무를 받고 국내에 파견되었다. 1920년 8월 이현수로부터 「의용단취지서(義勇團取旨書)」, 「의용단장정(義勇團章程)」 등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수령하고, 그의 지시로 임시정부와의 통신 연락과 독립공채 모집의 임무를 맡았다. 그 일환으로 달성군 달서면(達西面) 출신의 기독교인 정팔진(丁八鎭)과 함께 대구·안동·영천·경주 등 경북 일원의 친일 군수, 면장, 기타 관공리 및 부호 유지들에게 경고문·물품불구매고지서·납세거부서 등을 발송하였다. 또 이러한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대구시내 거리에 살포하여 반일 애국정신 고취와 군자금 및 독립공채 모집에 힘썼다. 1921년 12월 미국 워싱턴 군축 회의에 선교사를 통하여 「독립청원서」를 발송하였으며, 이현수가 집필한 영문 잡지 『자유(自由)』를 대구·평양·대전 등 전국 주요 지역의 외국인 선교사,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그리고 국내 각지에 비밀리에 배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탐지되어 1923년 1월 24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3년 1월 29일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심리를 받았으나 기소유예 불기소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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