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謙良
謙1895. 10. 2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애국부인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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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1895년 10월 24일 평안북도 평양부(平壤府) 경창리(景昌里)에서 태어났다.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6월 평양에서 기독교 장로파 신도들인 한영신(韓永信)·김용복(金用福)·김경선(金景善)·김보원(金寶源) 등과 평양 신양리 김경희의 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여성 비밀단체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애국부인회는 한영신을 회장으로 선출하고 동지 규합, 회비 징수, 군자금 모집, 민족의식 고취 등을 활동 방침으로 정하였다. 회원의 회비로 운영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별도로 결사대와 독립단을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그간의 활동을 점검하고, 당시 평양에서 별도로 조직되어 있던 감리교파 애국부인회와의 합동을 결정하였다. 이 무렵 평양에는 장로교파와 별도로 감리교파 여성 신도들인 박승일(朴昇一)·최순덕(崔順德)·이성실(李聖實)·손진실(孫眞實)·황신덕(黃信德) 등이 조직한 애국부인회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 단체 역시 임시정부 지원을 표방하고 있었다. 두 파의 연합에는 임시정부 요원인 김정목(金貞穆)·김순일(金淳一) 등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해 11월 장로파와 감리파의 애국부인회 대표자들이 만나 연합에 합의하고, 본부를 평양에 둘 것, 지회를 각지에 둘 것, 본부 임원은 양파가 공평하게 선임할 것, 이미 설치된 각파의 부인회는 그대로 지회로 둘 것, 지방으로 지회를 확대 설립할 것, 군자금을 모집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대한애국부인회는 지회의 설치·운영을 각파 간에 별도로 하고 본부만 연합한 것이었다. 그래서 평양에는 본부 외에도 감리파지회와 장로파지회가 별개로 있었고, 진남포에서도 양파의 지회가 병존하였다. 즉 대한애국부인회의 본부는 양파 간의 협의체적 기구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새롭게 연합한 대한애국부인회의 본부 서기와 평양 장로파지회의 서기를 맡았다. 대한애국부인회 서기를 맡다가 1919년 말 목포의 기독교 계통의 정명여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평양을 떠났다. 목포에서도 애국부인회 활동을 이끌었으며, 1920년 10월 정명여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지원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히면서 애국부인회 관련 사실이 밝혀지고,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22년 5월 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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