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見求
見求1905. 1. 1 ~ 1931. 7.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문경청년동맹
- · 경북도청년연맹
- · 문경농민조합
- · 신간회 문경지회
- · 조선공산당 고려공산청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905년 1월 1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문경면 하리(下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현구(李現求)를 사용하였다. 대구공립농림학교(大邱公立農林學校)를 졸업한 후 1927년 문경군청 농회(農會) 고원(雇員)을 거쳐 서기가 되었다. 일찍부터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1927년 10월 사회주의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소련으로 망명하려다가 평북 의주(義州)의 백마역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석방되었다. 석방 후에는 『중외일보』 문경지국을 운영하면서 청년운동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1월 문경 지역 청년운동단체의 연합조직으로 창립된 문경청년동맹(聞慶靑年同盟) 검사위원으로 선출되었고, 2월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청년운동을 주도하였다. 동시에 신간회 문경지회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문경지역 사회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3월 경북 상주 출신의 조선공산당 당원 강훈(姜壎)의 권유로 문경청년동맹에서 함께 활동하던 신봉일(申奉日)과 조선공산당의 전위청년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한 다른 지역 활동가들과 김천 등지에서 회합을 가져 활동 방향 등을 논의하였다. 그 해 6월 문경농민조합 창립대회에서 전형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농민의 권익 옹호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경북지역 청년단체의 연합조직인 경북도청년연맹의 소년부 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중국 만주에 거주하는 동포의 구호를 위한 연극을 열고, 입장료와 의연금 중 45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1928년 12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30년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무렵 경북 상주·안동·김천 등지에서 체포된 활동가들의 조사 과정에서 경북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 같은 해 4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12월 2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옥고를 겪던 중 일제 경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잔혹한 고문의 후유증과 열악한 수감 환경으로 폐막염에 걸려 1931년 6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한 달여 만인 1931년 7월 13일 문경면 하리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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