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형
尹在炯1926. 6. 21 ~ 1945. 8.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통영수산학교 학생 검거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1926년 6월 21일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현남면(縣南面) 남애리(南涯里)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이동양태(伊東良太)·이등양태(伊藤良太)이다. 활동 당시 주소는 경남 통영읍(統營邑)이었다. 1942년 통영수산학교(統營水産學校)에 입학하였다. 1941년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전선이 확대되면서 부족한 병력 보충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지원병 제도를 통해 조선인 청년, 학생들을 동원하였다. 1943년 8월 개정병역법을 시행하여 1944년 전면적인 징병제 실시 단계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통영수산학교 3학년 재학 중 이용규(李溶珪) 등 급우들과 함께 학생들을 근로봉사대(勤勞奉仕隊)라는 명목으로 강제적 노동에 동원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였다. 또한 일본이 곧 패할 것인데 미군이 상륙하게 되면 조선인들은 폭동을 일으켜 각 기관을 점거하는 등 미군에 협력하여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등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1944년 6월 19일 교실에서 급우들에게 “적기(敵機, 합군 비행기)가 통영에 와서 폭탄을 수산학교에 투척한다면 여름방학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같은 해 7월 초순 교실 칠판 위에 걸린 ‘천황(天皇)의 어진(御眞)과 궁성(宮城) 사진’에 침을 뱉는 등의 행동을 하였다. 이를 통해 급우들에 반일적 민족독립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일본인 학생들에 의해 일본인 교사와 일본인 학부모에게 알려지면서 모두 32명의 학생들이 붙잡혔다. 마산지검 충무지청에서 조사를 받고 그 중 24명은 석방되었으나 나머지 7명의 동료와 함께 1944년 11월 10일 부산지검으로 이송되었다. 1945년 2월 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불경죄 등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옥고 중 건강이 악화되어 같은 해 5월 22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고향인 강원도 양양으로 돌아갔으나 해방을 사흘 앞둔 8월 1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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