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용
尹九鏞1912. 6. 4 ~ 1934. 10.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본공산당 동경시위원회
- · 반제국주의민족독립지지동맹 일본지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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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7) 1912년 6월 4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 운문면(雲門面) 공암리(孔巖里)에서 태어났다. 고등보통학교를 마친 뒤 학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1929년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學)에 입학하였다. 대학 생활 중 일본인의 차별을 몸소 겪으며 민족의식에 눈떴다. 특히 1929년 11월 3일 국내에서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아 독립운동에 나설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젊은 동란들의 풍미한 거동”이 참으로 통쾌하다며, “민족적 모욕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더욱 높게 더욱 강하게 자라나겠다”고 하였다. 또한 “영악한 탄압 하에 한줄기 혈로(血路)를 닦아 근근이 살아나가는 약소 민족의 일원”으로서 “냉혹한 이성”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맹세하였다. “계급적 구속과 민족적 억압의 이중질곡”에 신음하는 한인을 해방시키기 위해 사회주의 운동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여겨진다. 반제국주의민족독립지지동맹(국제반제동맹) 일본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반제동맹이란 “제국주의 반대투쟁을 수행하고, 식민지·반식민지의 완전한 독립과 해방”을 목적으로 한 국제 조직이다. 이 단체에는 조선인 학생 다수가 가입했는데, 회원 수의 70~80%를 점했다고 한다. 이들은 학생 및 노동자에게 반전 의식과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같은 활동을 펼친 끝에 1933년 3월 붙잡혀 약 6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곧바로 일본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양태성(梁泰成)이 책임을 맡고 있던 도쿄시위원회 산하 중북지구위원회(中北地區委員會)의 와세다대학 세포에 배속되어 활동하였다. 대학 구성원들에게 공산주의 이론을 설파하고, 이들을 동지로 규합하는 데 진력하였다. 이 일로 1934년 2월 니시간다경찰서(西神田警察署)에 붙잡혀, 약 9개월 동안 잔혹한 고문과 열악한 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그러던 중 폐병과 심장병을 얻어 그 해 10월 3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도쿄의전병원(東京醫專病院)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같은 해 10월 1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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