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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尹榮善

1885. 1. 16 ~ 194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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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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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임시정부

지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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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5년 1월 16일 서울 종로구(鍾路區) 원서동(苑西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윤철(尹喆)·윤병각(尹炳覺)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 1910년대 평북 의주·창성·개천 등지에 사립학교를 세워 계몽운동을 펼쳤다고 알려져 있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매제 최창식(崔昌植)과 논의하여, 최창식만 상하이(上海)로 보내고 자신은 국내에 남아 활동키로 하였다. 그해 10월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조한옥(趙漢鈺)에게 국내 부호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보내자는 권유를 받고 동참하였다. 이후 이태훈(李泰勳)·김정술(金廷述) 등을 합류시켰다. 같은 해 11월쯤 이태훈·김정술과 서울 장림정에서 유학규(柳學圭)에게 계획을 알리고, 유학규의 주소지인 전북 정읍군 북면 승부리(承富里)로 가서 내장면 금명리에 살던 유하규(柳河圭)로부터 40원을 받았다.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유학규로부터 추가로 자금을 받았다. 이렇게 모집한 5천원 가운데 4,300원을 조한옥에게 주어 임시정부로 보냈다. 이어서 이태훈·최종응(崔鐘應)과 삼남지역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2월 경북 칠곡군 지천면 금호동 윤병돈(尹炳敦)의 집에서 경남 지역 인물들에게 「군자금 납입명령서」를 우편으로 보냈다. 또 그해 3월 임시정부가 발행한 12,500원에 해당하는 독립공채를 전달받았다. 독립공채는 어대선(魚大善)이 임시정부 요원 이영선(李英善)으로부터 받아 윤영선에게 전해준 것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의 근거가 되었다. 같은 해 9월 동지들과 함께 삼남지역의 자산가 명부를 작성하고 경북 영천지역 부호들에게 자금 모집에 나서라고 요구한 결과, 영천 출신 조석환(曹奭煥)·손계창(孫啓昌) 등으로부터 1천원을 받아 임시정부 파견원 고일정(高一政)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5월 24일 자택에서 어대선·이중혁 등과 군자금 모금을 협의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2년 9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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