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우
柳昶佑1884. 12. 11 ~ 1921. 11.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4년 12월 11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풍남면(豐南面, 現 풍천면) 하회리(河回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35세 되는 1918년 6월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広島)와 오사카(大阪)에서 조선소 직공, 공장 노무자, 상점의 직원, 우체국 집배원 등으로 일하였다. 1920년 2년 동안 모은 100여 원(圓)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어 상하이(上海)를 거쳐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기로 계획하고, 1920년 4월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배편을 기다리며 숙소에서 묵고 있던 중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 중인 이향(李香)을 만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임시정부의 독립공채(獨立公債) 발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임시정부의 공채모집위원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신원 보증을 위해 5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전부터 알고 지낸 우체국 집배원 일을 하는 신택균(申宅均)과 페인트 도장업에 종사하는 신현휴(申賢休) 2명을 상해로 데리고 가서 보증인으로 세웠다. 보증을 마친 후 9월 14일 이향의 안내로 임시정부 재무총장(財務總長) 이시영(李始榮)을 만나 조선 독립을 위한 공채 모집에 참여한다는 서약을 하고 경상북도 안동군 공채모집위원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시영으로부터 경상북도 안동군 공채모집원으로 임명하는 내용의 사령서, 대한민국 독립공채 1,000원 권 5매, 500원 권 10매, 100원 권 100매 등 총 20,000원에 해당하는 공채를 교부받았다. 이 밖에도 임시정부에서 선전용으로 발행한 잡지인 『신한청년(新韓靑年)』과 「조선독립에 관한 격문」도 함께 수령하였다. 공채 모집을 위해 상하이를 출발해서 나가사키(長崎)에 도착해 육로로 시모노세키(下關)로 이동하여 배를 타고 국내로 잠입하기로 계획하였다. 이에 1920년 9월 24일 홀로 나가사키로 가는 증기선 카스가마루(春日丸)에 탑승하여 나가사키에 입항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복식을 입고 거동이 부자연스러운 것을 수상하게 여긴 수상경찰서(水上警察署)의 불심검문을 받아 소지하고 있던 여러 문서가 발각되어 붙잡혔다. 일본 내지의 법으로 처벌할 법이 없어 경찰범 처벌 위반을 적용하여 구류 20일에 처해졌다가 국내로 송환되어 10월 18일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마친 후 11월 5일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1921년 11월 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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