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의
尹鳳儀1839 ~ 1919. 3.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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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9)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남하면(南下面) 둔마리(鈍馬里)의 안흥(安興) 마을 파평(坡平) 윤씨 집성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39년생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윤화옥(尹和玉)이고, 어머니 서산 정씨(瑞山) (鄭氏)는 정만술(鄭萬述)의 딸이다. 자는 순구(舜九), 호는 하당(河塘)이다. 부인은 여흥 민씨(驪興閔氏) 민명세(閔命世)의 딸이다. 1902년 품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1906년에는 이조참판(吏曹參判)에 가자(加資)되었다. 1919년 고종이 사망하자 (음)2월 2일 고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신안재(新安齋)에서 통곡하였다. 고종 장례 이후인 (음)2월 4일 아침에 유서 1통과 시 1수를 써 놓고 자결하였는데, 고을 사람들이 구원하였으나 (음)2월 7일(3월 8일) 사망하였다. 유서에 “오호! 통재라, 오백년 종사흥업(宗社興業)이 여기에서 끊기고 이천만 신민의 대의는 이제 멸망하였도다. 통탄하고 또 이르기를 백성과 국가는 부자와 같은 것으로 나라가 없는데 신이 어찌 홀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아아! 돌아가서 임금님께 고하리라”라고 적었다. 조선 왕조의 신하로서 군주와 운명공동체라는 유교적 국가관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일제가 고종을 독살하였다는 사실에 분개하며 죽음으로써 저항한 자결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지방 사림들이 일제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전형이다. 저술로 2권 1책의 석판본(石版本) 『하당유고(荷塘遺稿)』가 있다. 『하당유고』에는 1919년 고종이 승하하고 인산 다음날에 윤봉의가 자결하기 직전 쓴 「유서」와 민영환(閔泳煥)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고의 충신이라고 평가한 ‘만민보국영환(輓閔輔國泳煥)’으로 시작하는 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해의 마지막 날에 울분을 토로한 내용의 「경술세제야(庚戌歲除夜)」 등이 실려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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