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萬秀
萬秀1921. 3. 30 ~ 1975. 4.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애국청년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대한애국청년당
- · 부민관 폭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1년 3월 30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금광면(金光面) 개산리(開山里)에서 태어났다. 1943년 5월 일본에서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 한국인 노동자 궐기 농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45년 5월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설립, 같은 해 7월 24일 경성부민관(京城府民館), 현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아세아민족분격대회에 폭탄을 설치·폭발시켜 일본 요인과 친일파 등을 처단하려 하였다.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일제 파시즘이 극에 달하였다. 일제의 전황은 점차 패전으로 기울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물자와 한인의 강제 동원이 극심해졌고 경제적 파탄까지 초래되어 불만이 쌓여갔다. 일제의 패색이 점차 짙어지는 상황 속에서 민중들은 유언비어와 낙서 등의 ‘불온(不穩)’ 언동들을 표출하거나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일제의 패망과 독립을 희망하는 비밀결사들을 조직하여 일본군 고관 및 친일파 처단 등의 항일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일찍부터 일본에서 노동자로 생활하였는데, 1943년 5월 일본의 가와사키(川崎)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중, 한인 노동자들이 궐기하자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농성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같은 회사에 강제 수용되어 생활하다가 회사를 탈출하여 일본 내의 노무자 단체에서 강제 징용되어 온 동포의 구출 활동을 하였다. 일제의 한인 강제 징용에 민족적 분개심을 느낀 후 1944년경 귀국하여 1945년 5월 같은 뜻을 지닌 강윤국(康潤國)·조문기(趙文紀)·우동학(禹東學)·권준(權俊) 등과 함께 대한애국청년당을 비밀리에 조직하였다. 비밀결사를 통해 총독부 고관이나 일본군 수뇌,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1945년 7월 20일 일본 중의원 의원 박춘금(朴春琴)이 일본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결사봉공(決死奉公)’을 선전하는 이른바 대의당(大義黨)이라는 정당을 조직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한국인의 황민화(皇民化)를 강조하기 위해 서울 부민관에서 아시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는 정원간(丁元幹)·정유분(鄭維芬)·혜춘전(蕙春田)·고산호웅(高山虎雄) 등이 등단하여 아시아민족의 대동단결과 황도주의의 위대함을 연설할 계획이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 해 7월 24일 대한애국청년당원들과 함께 부민관 아세아민족분격대회장에 수색변전소 공사장에서 입수한 다이너마이트로 폭탄 2개를 만들어 연단과 복도에 장치하여 폭발시킴으로써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일본 요인과 친일파 등을 처단하려 하였다. 대한애국청년단의 의거 후에 일제는 범인 체포를 위해 거금 5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400여 명이 체포되어, 고문받았지만 청년당원들은 끝내 이를 피하였다.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을 맞은 이후, 『자유신문(自由新聞)』 등의 언론에서 이들을 조명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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