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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원

尹應元

1874 ~ 1911.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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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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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일(迎日)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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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박덕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기계면(杞溪面) 덕동(德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1년 사망 당시 38세인 것으로 보아 1874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윤덕오(尹德五)를 사용하였다. 1907년 11월경부터 박덕삼(朴德三)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총기를 휴대하고 주로 경기도 가평(加平)지역과 강원도 춘천(春川), 양구(陽口)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6일 춘천군 추곡(楸谷)에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패하여 일시 해산하였으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1908년 (음)1월 15일 윤태훈(尹泰勳)부대에 참가하여 같은 해 2월 20일까지 무기를 가지고 강원도 홍천(洪川)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윤태훈 의병장은 원래 박장호(朴長浩) 의병부대에 속해 있다가 독자적으로 박성춘(朴聖春) 의병부대와 합세하여 1907년 12월 20일 평창군 연평면(蓮坪面) 녹산(鹿山)에서 일본군 진부수비대와 전투를 벌였다. 비록 패하였지만, 1908년에 다시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여기에 참가하게 되었다. 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 붙잡혔는데 그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경성지방재판소의 판결 선고 일자를 참고하면, 윤태훈 의병장이 1907년 12월 20일 녹산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뒤 가지고 있던 무기들을 녹산 산속에 숨겨두었다가 1908년 7월경 다시 찾아 가지고 돌아오던 중 일본군 울진수비대에 의해 붙잡혔던 시기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9월 1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 7년을 받고, 유배지에 머물던 중 1911년 1월 10일 38세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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