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泰秀
泰秀186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봉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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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출신이다. 일본 측 자료에 의하면 1908년 당시 41세로 1867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월일, 사망연도,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08년 김봉기(金奉基)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1907년에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자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전개되었다. 의병운동은 1907년 8월 1일에 강제 해산된 대한제국의 군인들이 합류하면서 더욱 강성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봉기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경기도 광주(廣州)·용인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봉기는 1907년 (음)7월에 경기도 이천(利川)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근풍(李根豊)·주창룡(朱昌龍) 등과 함께 경기도 광주, 용인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후 김봉기는 서울 홍세영(洪世永)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려다 붙잡혀서 1908년 3월 13일에 평리원(平理院)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교수형을 받고 사망하였다. 김봉기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1908년 2월 11일에 박춘식(朴春植)·홍금만(洪今萬)·송금봉(宋今奉)과 함께 경기 용인군 성산리(城山里)와 마가리(麻柯里, 현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이후 다시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전지리(前枝里, 현 광주시 장지동)에서 군자금을 수합하다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1908년 6월 1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10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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