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환
兪宗煥1858 ~ 190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동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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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3)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58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는 한자가 다른 유종환(兪鍾煥)과 유종한(兪鍾漢)이 있다. 자료의 한계로 구체적인 출생월일, 성장 과정 등은 확인할 수 없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였다. 이후, 1907년에 고종(광무황제)이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강제 퇴위되고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었다. 이에 전국적으로 의병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07년 의병장 김동신(金東臣)과 함께 의거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의병부대에서 비장(裨將)의 직임을 맡아서 활약하였다. 김동신은 충남 회덕(懷德, 현 대전 대덕구 인근) 출신의 의병장으로 을사의병 당시, 민종식(閔宗植) 의병부대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정미의병 때에는 전북 정읍(井邑) 백양사(白羊寺)에서 의거하여 전라도, 경상도 일대에서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의병 활동에서 큰 활약을 한 김동신은 고향인 충남 회덕군 탄동면(炭洞面, 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덕진동(德津洞)에서 치료 중에 대전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에게 1908년 6월 8일에 붙잡혔다. 이와 같이 김동신이 붙잡히자 부하 80여 명을 인솔하였으며, 전성범(全聖範) 등과 함께 용담(龍潭)·금산(錦山)·영동(永同)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5월에 경남 거창(居昌)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충돌하여 교전 중에 부하 5명이 전사하였으며, 그 또한 당시 머리(후경부)에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된 이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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