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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在順

在順

188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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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在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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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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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양윤숙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6)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구암면(龜岩面, 현 구림면) 율북리(栗北里)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909년에 29세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일제는 1904년에 고의로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의 전개와 함께 강제로 한국과 한일의정서, 그리고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군사권·외교권·재정권 등 일련의 국권을 빼앗았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1905년에는 을사늑약의 체결로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가속화시켰다. 1907년에 이르러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구실로 삼아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강제 체결로 한국의 내정까지 침범하여 한국 군대 해산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침탈 행위에 분노한 애국지사들은 국권을 되찾기 위해 재차 의병을 일으켰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하에 양윤숙(楊允淑) 의병장의 의병부대에 들어가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인 양윤숙의 자가 윤숙(允淑)이고 호는 춘계(春溪)이다. 양인영(楊寅泳)·양춘영(楊春泳) 등의 이명이 있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최익현(崔益鉉)의 의병 봉기를 호소하여 임병찬(林炳贊)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908년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회문산(回文山)을 근거지로 의병 격문 배포, 일본군 공격 등 다양한 의병 활동으로 활약했던 의병장이었다. 1908년 (음)6월에 양윤숙 의병부대에 소속된 다른 의병 10여 명과 함께 임실군 군내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 모집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09년 12월 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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