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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載範

載範

187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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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劉載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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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풍(淸風)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풍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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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이경희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충청북도 청풍군(淸風郡) 근서면(近西面) 고명리(高明里, 현 제천시 수산면 고명리)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908년 당시 36세로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의병 활동을 시작하는 경위는 확인할 수 없으나, 주로 이경희(李慶熙)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4년 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일제는 고의로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전쟁을 전개하면서 강제로 한국과 한일의정서, 그리고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하였으므로 한국의 군사권, 외교권, 재정권 등 일련의 국권을 빼앗았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1905년에는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로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가속화시켰다. 이어 1907년에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삼아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강제 체결로 한국의 내정까지 침범하여 한국 군대해산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일련의 국권 침탈 행위에 분노한 애국 지사들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재차 의병을 일으켰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하에 이경희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충청북도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음)8월에 이경희 의병장을 따라 충주(忠州)·청풍·덕산(德山) 등 충북 일대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 모집, 일제 기관 습격 등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1908년 9월 1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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