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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寅協

寅協

187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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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寅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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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聞慶)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문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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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이명상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출신이다. 일제 측 재판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39세로 1872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성장과정이나 의병에 합류하기 전까지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1907년 말 정미의병의 전국적 항쟁이 시작되기 전인 그 해 2월 이미 이명상(李明相)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충북 단양(丹陽) 출신의 의병장 이명상은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일으켜 김상한(金商翰) 의병부대의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였다. 충북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무장 항쟁을 벌이다가 1909년 겨울 순흥(順興, 1914년 영주와 봉화로 편입)에서 교전 중 사망하였다. 이명상의 지휘 하에 충북 단양·영춘(永春)·청풍(淸風)·충주(忠州) 및 경북 문경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벌이며 일본 군경과의 교전에도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나, 의병을 ‘폭도(暴徒)’로 폄하했던 일본의 재판 기록에는 민간에서의 군자금 조달 활동만이 확인된다. 의병장 이명상이 사망한 이후에도 의병 활동을 지속하던 중 1910년 2월 18일 충북 제천경찰서 단양주재소의 순사에게 붙잡혀 같은 해 3월 2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던 중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일본이 한국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시행한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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