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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

尹逢春

1902. 3. 23 ~ 1975.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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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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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정평(定平)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정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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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3)

관련 사건

  • · 대한국민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3) 1902년 3월 23일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에서 아버지 윤득주(尹得周)와 어머니 최성의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의 강요에 의한 창씨명으로 청산봉춘(靑山逢春)을 사용하였다. 출생지는 정평이지만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회령(會寧)에서 보냈다. 회령공립보통학교와 김약연(金躍淵)이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명동촌(明東村)에 세운 명동학교(明東學校)를 다녔으며, 한때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서도 수학하였다. 함북 지방과 간도 지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영화계에 투신하여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다수의 영화 제작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초순 함북 회령에서 나운규(羅雲奎)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9일 청진지방법원 회령지청에서 징역 4개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19년 6월 함북 회령에서 홍범도(洪範圖)의 부하인 김사협(金仕挾)·김도빈(金道斌)·강빈(姜斌) 등에 의해 조직된 비밀결사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서 재무부장을 담당하는 한순범(韓舜範) 밑에서 군자금모집 제1반에 장순명(張順明)·장도명(張道明)과 함께 소속되어 1920년 8월 함북 경성(鏡城)지방에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그리고 독립군의 국내 진공을 보조할 목적으로 함북 나남(羅南)에 주둔하는 일본군 제19사단본부와 회령에 주둔하는 수비대 사이의 교통을 차단하기 위하여 청회선(淸會線) 터널 폭파 및 전선의 절단 임무를 맡았지만 1921년 1월 나운규·엄일선(嚴逸善)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21년 3월 5일 청진지방법원 회령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청진으로 호송되어 옥고를 겪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함북 회령으로 돌아가 교회에서 서무를 보며 지내다가 친우인 나운규의 권유로 서울로 와서 1927년 조선키네마에서 제작하고 나운규가 감독을 맡은 『들쥐』라는 작품을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하였다. 1930년에는 노동과 야학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세상의 세파 속에서 타락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담은 『도적놈』이란 작품으로 영화감독이 되었다. 1931년 제작된 두 번째 감독 작품인 『큰 무덤』은 중국 만주에서 학살된 독립군과 민간인의 무덤을 의미하는 제목의 영화였다. 광복 이후에도 1947년 『윤봉길 의사』, 1948년 『유관순』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영화를 다수 연출하였다. 1956년 한국영화인단체연합회 초대 회장, 1962년 한국영화인협회 초대 이사장, 1963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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