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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복영

尹復榮

1868. 4. 28 ~ 196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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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복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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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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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북로군정서
  • · 대한독립군단
  • · 한족동향회
  • · 신민부
  • · 한국독립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8년 4월 28일 서울시 종로구(鐘路區) 창성동(昌成洞)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장단(長湍)이다. 호는 화전(樺田)이며, 이명으로 윤주영(尹胄榮)을 사용하였다. 대종교(大倧敎) 교도였다.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한말(韓末)에 군수를 역임하였다. 1913년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북간도에서 서일(徐一)·김좌진(金佐鎭)·현천묵(玄天默) 등과 함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창립에 참여하여 길림분서(吉林分署)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북로군정서는 대종교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독립운동단체 중광단(重光團)이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정의단(正義團)으로 확대·개편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한 항일무장부대였다. 1922년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목적으로 결성된 전만통일준비회(全滿統一準備會)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같은 해 8월 자유시참변 이후 북만으로 돌아온 김좌진과 이범윤(李範允)이 연합하여 새롭게 결성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에 박영희(朴寧熙)·이장녕(李章寧)·남성극(南星極) 등과 함께 가담하였다. 1925년 3월 10일 닝안현(寧安縣) 성내(城內)에서 신민부(新民府)가 조직되자 창립총회에서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외교부 지린성(吉林省) 전임외교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범윤·이장녕 등과 함께 신민부의 의회라고 할 수 있는 참의원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신민부는 1925년 1월 북만지역의 독립운동세력이 무링현(穆陵縣)에서 개최한 부여족통일회의(夫餘族統一會議)를 통해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의 김좌진·최호(崔灝)와 대한독립군정서(大韓獨立軍政署)의 김혁(金赫)·조성환(曹成煥)·정신(鄭信) 등이 연합하여 결성한 북만지역 최대의 항일독립운동단체였다. 신민부는 발족 직후 휘하에 보안대(保安隊)와 별동대(別動隊) 등 약 450명의 병력을 두고 항일무장투쟁에 주력하는 한편, 세력권 내의 각 지방마다 총판(總辦)을 두어 재만 한인의 보호와 자치행정에도 힘을 기울였다. 특히 같은 해 지린성 한족동향회(韓族同鄕會) 회장으로도 선임되었다. 한족동향회는 주로 만주지역 한인들이 중국인이나 중국 군경(軍警)에게 받고 있던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고 중국 당국과의 교섭을 통해 한인사회를 보호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9년 남북만주의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한 회의가 개최되자 지린의 교민 대표로 군민의회(軍民議會)에 참여하였다. 1930년 7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조직되자 이에 참가하는 한편, 쑤이위안현(綏遠縣) 남부의 황무지와 마초장(馬草場)을 개간하여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이듬해 만주사변이 발발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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