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형
金根瀅미상 ~ 19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회
- · 태극서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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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평안남도 평양(平壤) 출신이다. 신민회 조직 외곽단체인 태극서관(太極書館)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신민회에 가입하였다. 1908년 5월 평양에 처음 설립된 태극서관은 이승훈(李昇薰, 1864~1930)이 설립 자금을 마련하고 운영은 안태국(安泰國, ?~1920)이 맡았다. 이 시기 평양의 대성학교(大成學校)를 비롯한 교육 입국을 목적으로 여러 사립학교가 설립되자, 이러한 교육기관에 신지식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각종 서적과 교재 등을 공급 판매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태극서관은 서적과 교재 외에도 각종 학용품과 측량기구 및 과수(果樹) 공급에 필요한 종자 씨 등도 판매하였다. 이밖에 『소년』 잡지와 『대한매일신보』 구독 보급망 역할도 하였다. 태극서관은 1910년 봄 서울에 지점을 두었는데 그해 10월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가 조직되어 『삼국사기』, 『동국통감』, 『택리지』, 『해동소학』 등이 발간되자, 이를 판매 보급하였다. 당시 계몽사상 교재로 넓게 사용된 양계초(梁啓超, 1873~1929)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 보급과 판매도 하였다. 평양 태극서관 운영 책임을 맡고 있던 안태국이 서울지점 운영을 위해 상경하자, 송종원(宋鐘遠)과 함께 평양 태극서관의 행정 사무를 맡아 운영을 총괄하였다. 이즈음 안태국을 통해 신민회에 가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신민회 평양 지회장인 안태국과 평양 도반장(都班長) 장응진(張膺震, 1890~1950)의 주도하에 이덕환(李德煥, 1876~?)·나일봉(羅一鳳)·차리석(車利錫, 1881~1945)·김두화(金斗和, 1884~1967)·김동원(金東元, 1882~?)·변인서(邊麟瑞, 1882~?) 등 17인과 함께 신민회 평양지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 10월 선천(宣川)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 학생과 교사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체포되던 즈음 평양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총독부 경무총감부 산하 용산 헌병대로 끌려갔다. 일제 총독부 당국자들에 의해 날조된 ‘총독 모살미수사건’(總督謀殺未遂事件) 즉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헌병대에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으며 고문당하였다. 요지는 105인사건 피의자들이 초대 총독 테라우치 마사다게(寺內正毅)를 암살하고자 모의하였다는 허위사실을 시인토록 한 것이다. 105인사건 피의자로 구속 중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는 신문 과정에서 순국하였다. 이때 구속 중 함께 순국한 사람으로 정희순(鄭希淳, 1880~1911)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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