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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갑

尹奉甲

1924. 6. 6 ~ 198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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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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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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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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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4년 6월 6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이서면(伊西面) 서원리(書院里)에서 태어났다. 1943년 10월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1944년 5월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중국군 유격대에 가담하였고, 1945년 4월 토교대에 입대하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광복군 선언문」에서 “광복군은 한·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국광복군 창설의 취지를 선언하였다. 이로써 중국 충칭(重慶)의 쟈링빈관(嘉陵賓館)에서 광복군이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창설되었다. 1943년 10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고, 중국에 파견된 춘(椿) 8642부대에 배치되어 복무하였다. 이후 충칭의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관한 정보를 일본군 병사로부터 전달받고, 이에 1944년 5월 일본군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여 중국군 유격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45년 4월 중국 충칭에 도착하여 토교대(土橋隊)에 입대하였다. 당시 토교대는 일본군에서 탈출한 한적 사병들이 지대에 정규 배치되기 전까지 임시로 대기하던 일종 광복군 보충대 역할로 운영되고 있었다. 토교대를 나와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警衛隊)에 배속되었다. 경위대는 크게 임시정부 경비와 임시정부 고위 요원 호위를 맡았으며, 초소 운영과 순찰, 출입자 안내 및 단속 등 임시정부의 안전을 책임졌다. 이러한 경위대에 복무하면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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