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수
尹鳳秀1889. 1. 20 ~ 1971. 10.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울산군 언양면 언양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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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1889년 1월 20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언양면(彦陽面) 직동리(直洞里,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직동리)에서 태어났으며, 일제의 강요에 의한 평소봉수(平沼鳳水)라는 일본식 이름이 있었다. 1919년 4월 2일 언양면 언양시장에서 궐기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들에 의한 독립선언이 낭독되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궐기하자 그 소식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다. 마침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서울에 체류하던 천도교 울산교구장 김교경(金敎慶)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신문』과 『국민회보』를 필사하여 울산교구로 보냈는데, 울산의 천도교인은 이것을 받고 교인 이규장(李圭章)을 서울로 파견하여 김교경으로부터 만세운동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규장은 최해규(崔海圭)·곽해진(郭海鎭)·유철순(兪哲淳) 등 같은 천도교인들과 함께 4월 2일 언양시장에서 궐기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31일 일대를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던 일제 경찰에 의해 최해규·곽해진·유철순 등이 검속(檢束)되는 일이 있었지만, 유학자 이규인(李圭寅)과 이규장의 휘문의숙 동문 이무종(李武鐘) 등의 주도 하에 천도교인들은 4월 1일 태극기와 격문을 준비하여 거사 계획을 완료하였다. 4월 2일 천도교인들은 장터에 와서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11시에 만세운동을 궐기할 것을 예고하였는데, 장터를 감시하던 일제 헌병이 교인들을 거동 수상자로 붙잡아서 주재소로 연행하였다. 이때 김성진(金聲振)을 비롯한 다른 천도교인들이 숨겨온 태극기를 꺼내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장터에 있던 언양면 주민들과 상인들 또한 대열에 합세하였는데, 이때 시위대와 함께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700여 명이 운집한 장터의 만세운동 대열은 일제 경찰에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외치며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고,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헌병들을 응징하여 그들의 무기를 빼앗았다. 이에 일제 경찰과 헌병대는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만세 행렬을 해산시키고 만세운동의 주도자들을 붙잡았는데, 이들과 함께 붙잡혀 형사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치안을 혼란케 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이른바 보안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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