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93. 5. 14 ~ 1969. 3.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관련 사건
- · 청양군 운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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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6) 1893년 5월 14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운곡면(雲谷面) 모곡리(茅谷里)에서 태어났다. 순교(順敎)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4월 운곡면 횃불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일제 경찰에 사전에 발각되어 좌절되었으나, 운곡면에서는 1919년 4월 3일부터 만세운동 시도가 있었다. 이것은 청양군 내에서 시작된 최초의 만세운동 움직임이었다. 이후 운곡면의 만세운동은 4월 6일과 8일 2차례에 걸쳐 야간에 횃불만세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4월 8일의 제2차 횃불만세시위는 인근의 비봉면(飛鳳面) 주민들과 함께 한 연합시위였다. 운곡면 횃불만세시위의 주도 인물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들로부터 사전에 연락을 받고 송석지(宋錫智·宋白龍)·송석규(宋錫圭) 등 모곡리 주민들과 함께 4월 6일 밤 횃불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시위에는 운곡면의 면소재지인 신대리(新垈里)를 중심으로 모곡리·영양리(永陽里)·효제리(孝悌里)·후덕리(厚德里)·위라리(位羅里)의 주민 600여 명이 참여하였다. 마을의 인근의 산 위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2차로 전개된 4월 8일 밤의 만세시위에는 운곡면의 횃불만세시위에 영향 받은 이웃한 비봉면의 주민들이 적극 호응하여 오후 10시부터 운곡면과 비봉면의 주민 600여 명이 연합하여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횃불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일제 헌병들이 운곡면으로 출동했으나 야간에 전개된 횃불만세시위에 일제 헌병들은 산 위로 직접 올라오지 않고, 만세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시위대의 해산에 주력하였다. 일제는 날이 밝은 후 각 마을에 헌병을 파견하여 횃불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활동을 전개하였다. 횃불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혐의로 일제 헌병에 붙잡혀서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21일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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