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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73. 7. 7 ~ 1936.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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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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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73년 7월 7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馬中里)에서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성장 과정과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 남상직(南相直), 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개인 연장을 지참한 약 600여 명의 주민들이 4월 4일 아침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면장 이인정은 도로 보수는 위장된 목적이며 실제 목적은 만세운동임을 밝히고, 주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 연설에 공감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이들을 만세시위 대열로 정비하고, 마중리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로부터 7km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결합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대규모 만세시위대의 규모에 기세가 올라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즈음 천의장터에 도착한 당진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들의 발포로 4명의 시위 참여자들이 부상당했다. 이를 보고 분노하여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행동총책 송재만의 지휘에 따라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자진 해산하였다. 만세시위 참여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의해 붙잡혔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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