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낙구
尹洛龜미상 ~ 1919. 3
포상 정보
- · 애국장(2000)
관련 사건
- · 19191년 평안북도 구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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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0) 자료의 한계로 자세한 생년월일과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3월에서 4월에 걸쳐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기록에 따라서는 사망자 명단에 윤낙두(尹洛斗)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나, 이는 이명으로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구성군에서는 3월 31일과 4월 1일 구성면·방현면(方峴面)·사기면(沙器面)에서 격렬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세 곳의 만세시위를 기획한 주체는 천도교를 비롯한 종교계였다. 셋 중 어느 만세시위에 참여했는지는 자료의 한계로 알 수 없으나 구성군 만세시위 참가 중 사망하였다. 구성면에서는 3월 31일 오전과 정오에 수백 명이 시위운동을 하며 성내에 진입하고자 하였다. 다음날인 4월 1일 오전 10시에는 약 3,000명까지 늘어나 읍내를 행진하였다. 3월 31일은 방현면 남시(南市)의 장날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다. 정오에 천도교도들을 중심으로 5,000명이 남시헌병주재소를 포위하였다. 다음날에도 300명이 남시에 집결하여 다시 만세시위를 진행하였다. 한편, 3월 31일 오전 사기면 신시동(新市洞)에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모여 약 1,000명의 시위대를 이루어 헌병주재소로 몰려갔다. 4월 1일에는 신시시장에서 약 1,500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고 주변 지역에서도 신시동으로 향하다가 일제 수비군에 막혀 해산하기도 하였다. 3월 31일과 4월 1일 구성군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일제 측은 보병 77연대를 파견하여 잔인한 탄압과 운동참가자 체포를 진행하였다. 이로 인해 구성면·방현면·사기면 만세시위 참가자 중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김병조(金秉祚)가 편찬한 『한국독립운동사략 상편』에 따르면, 일제의 탄압과정에서 허전(許典)·고두일(高斗一)·백의경(白義景) 등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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