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중
尹箕重1895. 2. 23 ~ 1936. 8.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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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95년 2월 23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백곡리(白谷里)에서 태어났다. 정산면 정산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산면의 만세시위는 백곡리의 유림을 중심으로 한 1919년 4월 5일의 정산시장 만세시위와 권흥규(權興圭)의 사망을 계기로 4월 6일 목면(木面) 일대까지 확산된 만세시위의 2단계로 전개되었다. 홍범섭(洪梵燮)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정산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생각으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그는 평소 교류하던 유림들에게 4월 5일 아침 일찍 자신의 집으로 모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먼저 도착한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박상종(朴商鍾)·홍세표(洪世杓)와 만세운동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당일이 정산시장의 장날이었기 때문에 만세운동을 이날 즉시 실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직후 임창순(任昌淳)·임철재(任哲宰)·김필현(金弼鉉)·윤구학(尹龜學)·이건호(李建鎬)·이태호(李台鎬)·박춘서(朴春西)·윤봉학(尹鳳鶴)·이건직(李建直)·(建植)·우달명(禹達明) 등과 함께 뒤늦게 홍범석의 집을 방문하였다. 홍범섭 등으로부터 만세운동에 관한 내용을 듣고, 즉시 이에 동의하였다. 오전 내내 만세시위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만드는 등 긴급하게 만세시위 준비를 하여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으로 갔다. 오후 3시경부터 홍범석·박상종·홍세표·윤석희 등 만세운동을 함께 준비한 10여 명의 유림들과 함께 시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소수의 인원으로 처음 만세운동을 전개할 때는 곧바로 출동한 정산헌병분견소(定山憲兵分遣所)의 헌병들에게 밀려났지만, 재차 시장 안으로 진입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시장에 나온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였고, 이들과 시장의 곳곳에서 ‘조선독립만세’를 함께 외쳤다. 이에 재차 일제 헌병들이 출동하여 만세시위대에게 즉시 해산할 것을 강하게 경고하는 동시에 30여 명을 체포하였는데, 만세시위의 주도인물 중 1인으로 파악되어 홍범섭·박상종·홍세표·윤석희 등과 함께 청양헌병분견소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2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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