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섭
尹基燮1894. 5. 10 ~ 1986. 11.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장곡면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94년 5월 10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홍성군 장곡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4일 윤형중(尹衡重)·윤익중(尹益重·世重)·윤낙중(尹樂重) 3형제의 주도로 장곡면의 화계리·광성리(廣城里)·신풍리(新豊里) 주민 100여 명이 응봉산(鷹峰山)에서 횃불을 올리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가송리(佳松里)의 김동하(金東河·東化)가 4월 7일 장곡면에서 주도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김동하는 4월 4일의 만세운동 이후 그 뒤를 이은 새로운 만세운동을 전개할 생각으로 김용제(金用濟)·김동완(金東完)·김용숙(金容肅)·이화춘(李化春)·한상철(韓相喆) 등과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4월 7일 김동하 등의 연락을 받고 화계리 주민들과 함께 마을 앞산에서 열린 회합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김동하 등의 연설을 듣고,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주민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 소재지인 도산리(道山里)로 행진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합류한 광성리, 가송리의 주민들과 함께 응봉산에 올라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때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한상철의 연설과 독립선언서의 취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시 한 번 만세운동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주민들과 북을 치면서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규탄 집회를 마친 뒤 김동하의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김동하가 면사무소를 공격하라고 외치며 먼저 돌을 던지기 시작하자, 김용제·김동완·김용숙·이화춘·한상철 등과 함께 돌을 던지며 면사무소 공격에 참여하였다. 곧이어 다른 주민들도 뒤따라 면사무소 공격에 동참하여 돌과 몽둥이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 기물, 문서 등을 파괴하였다. 다음날인 8일 밤에도 11시경부터 전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 60여 명과 함께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이후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은 후,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어 법원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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