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奉基
奉基1901. 3. 24 ~ 1978. 8.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영광군 영광읍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901년 3월 24일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영광면(靈光面) 백학리(白鶴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그 해 3월 27일 영광군 영광읍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전국적으로 전개된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영광군에서도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조철현(曺喆鉉)과 유일(柳一)이 직접 서울의 만세운동을 경험하고는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영광군으로 내려와 지역 인사들과 접촉하며 동참할 사람을 모으고자 하였다. 한편 영광군 내에서도 영광보통학교 교사 이병영(李炳英)을 비롯하여 영광보통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영광군 내만세시위를 자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3월 14일과 15일에 걸쳐서 영광군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27일에는 영광보통학교 졸업생들이 주도한 만세시위가 대대적으로 발생하였다. 이날의 시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앞장서서 주도하였다. 서순채(徐淳彩)·김준헌(金浚獻)·조병완(曺秉浣) 등과 함께 독립을 위하여 영광읍내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시위 전날인 3월 26일에는 본인의 집에서 조병완과 함께 시위 당일 현장에서 나누어 줄 유인물을 작성하였다. 유인물은 병합 이전 작성된 유년필독 서책 중에서 독립사상을 고취할 수 있는 구절을 발췌한 것으로 그 내용은 ‘세계 일등 우리대한’, ‘수·당은 우리의 패장이요 일본은 우리의 제자이니 독립의 권리를 잃지 말라’ 와 같은 짧은 문장을 뽑아 노래를 만들고, 그 사본을 20여 장 작성하였다. 조병완 등과 함께 이 사본을 영광면 남천리 길가에 산포하여 두었다. 시위 당일인 3월 27일 다른 시위 주도 인물들과 함께 태극 문양의 기를 여러 개 준비하고 유인물을 군중에게 나누어주며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행진하고자 계획하였으며, 이를 주위 학생들에게 알려 시위 참여를 권유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일제 경찰에 사전 발각되어 붙잡히고 말았다. 1919년 5월 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