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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福燮

福燮

1895. 4. 5 ~ 1949.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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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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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군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5년 4월 5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개정면(開井面) 개정리(開井里, 현 군산시 개정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유복섭(劉復燮)을 사용했다. 1919년 당시 옥구군 개정면의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이었다. 3월 5일 옥구와 군산(群山府)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옥구군 개정면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초 영명학교의 교사였던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 등과 군산 야소교병원(耶蘇敎病院) 사무원(事務員)이었던 안경태(安敬泰) 등의 주도로 준비되었다. 이들은 3월 6일 군산 내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영명학교 구내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며 거사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것이 사전에 발각되어 3월 5일 새벽에 대부분의 주도 세력이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러자 오한길(吳漢吉)·송기옥(宋基玉) 등 같은 학교 학생들과 더불어 마을 주민들 50여 명을 모은 뒤,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군산 시내로 행진해 나아갔다. 시내 군산경찰서 앞에서 구속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펴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같은 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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