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민
金國敏1902. 10. 7 ~ 1969. 3.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 · 신흥무관학교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1902년 10월 7일 평안남도 강동군 원탄면 봉도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9월 김봉원(金鳳源)의 권유로 왕기서(王基西)·김봉섭(金鳳燮)·김태섭(金泰燮)·김순록(金淳祿)·김국록(金國祿) 등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김봉원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으로부터 군자금모집원의 임명장을 받고 최선식(崔善植)·정석흥(丁錫興)·김찬두(金贊斗)·박원국(朴元國) 등과 함께 평남 대동군과 강동군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전념하다 1921년 6월 22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청년단에 가입한 직후 김봉원으로부터 권총과 실탄을 교부받은 후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발각되어 도피하였다. 허영진(許永鎭)의 평남 안내로 대동군 율리면 구동창리 조기원(趙基元)의 집에 숨어 있다가 1921년 9월 왕기서를 만나 다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9월 12일 대동군 청룡면 양지리에 거주하는 김성빈에게 군자금 100원을 확보한 후 영수증을 써 주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원이라는 신임장(대한국민이라는 표서와 안창호의 사진을 박은 신임장)을 보이며 태평양회의만 끝나면 한국은 독립된다는 말을 하고 종적을 감추었다. 조기원의 집에 숨어 있다는 밀고를 접한 평양경찰서와 평안남도경찰부의 대대적인 수색으로 9월 16일 왕기서와 함께 체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허영진이 피살되었고, 조기원·주석환(朱錫煥)·서달선 등 3명은 도주하였다. 1921년 10월 28일 평양지방법원에서 대한독립청년단원으로 권총을 휴대하고 각처에서 군자금을 강탈하였다는 사실로 징역 8년 형이 구형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군자금을 강탈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인 이상 조선 독립운동에 군자금을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돈을 받은 것이지 결코 협박한 일이 없다’라고 강변하였다. 11월 4일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및 강도 혐의로 징역 8년 형을 받았다. 이 판결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면서 군자금을 자발적으로 받은 것이지 추호도 강제로 강탈한 적이 없으므로 강도죄는 억울하다고 주장하였다. 12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는 이를 기각하였다. 고등법원에 상고를 하였으나 1922년 1월 28일 고등법원에서도 이를 기각하여 징역 8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이후 자세한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용서⋮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