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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혁

柳東爀

1891. 9. 12 ~ 1920.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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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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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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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1년 9월 12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수곡동(水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이명으로 유동경(柳東駉)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中坪洞) 편항시장(鞭巷市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안동군에서는 3월 13일 안동면에서 이상동(李相東)의 1인 만세시위가 일어난 이후 만세운동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동수(柳東洙)·유연성(柳淵成)·유교희(柳敎熙) 등이 비밀리에 편항시장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각자 구역을 나누어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수곡동은 유교희가 맡아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국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며 편항시장의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때 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망설임 없이 동참을 약속하였다. 3월 21일 거사 당일 편항시장으로 향하였다. 편항시장은 아침부터 장꾼들로 붐볐으며 그 속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오후 2시경 유연성이 앞으로 나와 군중들을 향하여 연설을 시작하였다. 유연성은 왜 만세운동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유연성의 만세 선창에 다른 주민들과 함게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만세 함성에 장터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도 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동참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만세운동의 열기가 높아갈 무렵 일제 경찰이 급파되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이 만세운동 참여자 배태근(裵太根)에게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보고 다른 군중들과 함께 분노하며 경찰에게 달려가 제지하였고, 놀란 경찰은 주재소로 달아났다. 이어서 시위대도 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로 이르는 동안 군중은 더욱 늘어나 500여 명을 헤아렸다. 주재소에 도착해 다른 시위대와 함께 돌과 몽둥이로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 주재소 벽과 창문 등을 파괴하였고 사무소 안의 비품과 서류도 모두 파기하였다. 또 경찰에게 빼앗은 대검과 권총, 주재소 안에 있던 총검과 탄환도 모두 우물 안에 버렸다. 주재소 시위가 끝난 후 일부 군중들과 함께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면사무소로 달려가 사무소 건물과 비품 등을 부수고 장부와 문서도 모두 파기하였다. 면사무소를 모두 파괴한 시위대는 새벽 3시까지 만세시위를 펼친 후 자진 해산하였다. 다음날부터 일제 경찰은 만세운동 관련자 검거 작전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감되었다. 같은 해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죄, 가택침입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지만, 그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 후유증과 모진 수감생활로 이듬해인 1920년 4월 4일 3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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