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찬
尹斗贊1894 ~ 1921. 3. 8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자료의 한계로 개인 행적과 만주로 이주한 시기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21년 사망 당시 『독립신문』 기사에 28세로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94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는 윤두현(尹斗賢)을 사용하였다. 만주의 창바이현(長白縣)에서 거주하고 활동하였는데, 창바이현은 혜산진(惠山鎭)과 삼수(三水)·갑산(甲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1908년에 창바이부(長白府)가 설치되었으며, 1912년 창바이공서(長白公署)로 개칭되었고, 펑톈성(奉天省) 관할에 속한다. 둥루도(东路道)로 불리던 이곳은 1914년 6월부터 동변도(東邊道)로 개칭하였고, 관활구역의 관원을 도원(道员) 또는 도윤(道尹)이라고 불렀다. 세분화된 구역에는 변윤(邊尹)이 있었고, 당시 중국인 하자장(何子章)이 창바이현 일대를 관할하였고 한인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인해 한인들의 생활은 빈곤하였다. 당시 험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 단체들을 위하여 당시 지방경호원(地方警護員)의 신분으로 군자금 모집을 행하다가, 1921년 3월초 창바이현 13도구(十三道溝)에서 이성배(李成培)와 함께 중국 관헌에게 붙잡혔다. 그 후 일제 경찰의 손에 넘어간 후 같은 해 3월 8일 살해당하였다. 당시 창바이현 일대 한인들은 400여 명이 체포되었고, 사망자는 212명에 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