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은
尹炳殷1878. 1. 10 ~ 1948. 4.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합천군 묘산면(3.22)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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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78년 1월 10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묘산면(妙山面) 팔심리(八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합천군 묘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군은 삼남지역에서 가장 빈번하고 열정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된 지역이다. 계기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종 국상(國喪)으로 상경한 지역 유림이나 서울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18일 삼가(三嘉) 시위가 최초의 거사였고, 이후 거의 매일 같이 합천 군내 각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묘산면 만세시위도 그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 3월 18일 이후 군내 각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윤씨 집성촌인 팔심리에서도 뜻을 같이 하는 여러 명이 모여서 만세 거사를 계획하였다. 윤병석(尹炳奭)·윤병재(尹炳載)·윤병대(尹炳大)·윤병교(尹炳喬)·윤형범(尹炯凡)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적으로 준비하였다. 만세시위 날짜는 3월 24일로 결정하였다.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 제작 등 도구 준비와 뜻을 같이 하는 군중들에게 은밀히 연락하기 위한 연락책 역할 등을 분담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거사 전날인 3월 23일, 윤병석·윤병대·윤병재 등과 함께 윤형범의 집에서 만세시위대 선두에서 흔들 대형 태극기 3개를 제작하였다. 1919년 3월 24일, 만세시위를 위해 약 100여 명의 군중들이 모였고 선두에 서서 제작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군중을 이끌고 묘산면사무소로 몰려갔다. 면사무소에 도착해서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고, 군중이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만세시위가 알려지면서 합천군내 주재소 경찰들과 일본군 헌병이 출동하여 폭력적인 진압을 시작하였다. 투석을 한다거나, 면사무소에 난입하여 집기와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물리력 행사 없이 평화적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 군경은 착검한 총으로 위협하며 무자비한 군중 해산을 개시하였고, 시위대를 이끌고 있는 주도자들을 색출하여 붙잡아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일제 군경의 손에 붙잡혔고, 윤병석·윤병대·윤병재 등과 함께 모진 고문을 받은 후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1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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