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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림

尹炳林

1898. 1. 22 ~ 192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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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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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청도 운문면(3.15
  • · 3.18)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8년 1월 22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운문면(雲門面) 공암동(孔岩洞, 현 공암리(孔岩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인 윤상일(尹相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學)에서 유학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운문면의 만세운동은 사립 문명학교(文明學校) 출신 김상구(金相久)와 김종태(金鍾台)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의 장례에 참가하려고 상경하였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였다. 이후 고향 청도로 돌아와, 3월 10일 문명학교 교장 김우곤(金禹坤)의 집에서 동네 청년들에게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세운동에 대해서 알렸다. 3월 15일 손기현(孫琪鉉)과 김재화(金在華)는 박창기(朴昌淇)의 집에서 만세운동을 격려하는 벽보를 작성하여, 20장을 운문면 주요 장소에 부착하였다. 이 벽보 사건으로 3월 18일 김진효(金鎭孝)·김상구·김종태·강재식(姜在植) 등이 대천동(大川洞) 운문주재소(雲門駐在所)에서 취조를 받았다. 취조를 마친 이들은 점심을 먹다가 만세운동을 당장 실시할 것을 결의하고 먼저 운문면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김종태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2척 가량의 명주 수건에다가 먼저 ‘대(大)’자를 써넣었다. 그러자 김진효가 면서기 4인으로 하여금 ‘한(韓)’, ‘독(獨)’, ‘립(立)’, ‘만(萬)’을 쓰도록 하였다. 마지막 글자인 ‘세(歲)’는 다른 사람이 써넣어서 ‘대한독립만세’라는 깃발이 완성되었다. 이 깃발을 들고 면사무소에서부터 만세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동생 윤병채(尹炳采)와 면사무소에서 합류하였다. 면사무소에서 나와서 운문면 면장인 이영호(李永浩)의 집 앞에서 시위를 이어 나갔다. 이후 다시 주재소로, 다시 면사무소로 행진하면서 만세를 외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3월 18일 밤 공암동 강가에 있는 정자에서 마을 주민들과 그 날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나누었다. 함께 술을 마시던 김문근(金文根)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함께 술을 마시던 김문근·이용환(李龍煥)·최성희(崔聖熙)와 함께 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 부근에 있던 7~8명에게 만세를 권유하여 함께 만세를 외치다 해산하였다. 이 만세시위의 주도자를 체포하기 위해서 일본군 헌병 3인과 경찰 약 5인이 파견되어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등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재차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 때 당한 고문과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앓다가 1923년 11월 18일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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