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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만수

尹萬洙

1887. 7. 9 ~ 1939.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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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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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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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홍성군 장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7년 7월 9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윤만수(尹萬水)와 윤만용(尹萬用)이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장곡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장곡면에서는 1919년 4월 초부터 여러 차례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최초의 만세시위는 4월 4일 윤형중(尹衡重)·윤익중(尹益重·世重)·윤낙중(尹樂重) 3형제가 주도하였다. 이들은 화계리·광성리(廣城里)·신풍리(新豊里)의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매봉산에서 횃불을 올리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일 뒤인 4월 7일 가송리(佳松里)의 김동하(金東河)를 중심으로 김용제(金用濟)·김동완(金東完)·김용숙(金容肅)·이화춘(李化春)·한상철(韓相喆) 등이 협력하여 새로운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김동하의 주도로 4월 7일 화계리 마을 앞산에서 열린 주민 회합에 참석하였다. 한국이 독립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설명하며 앞서 전개되었던 만세운동에 이어 다시 만세시위를 일으키자는 김동하 등의 연설을 듣고,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김동하의 지휘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다른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 소재지인 도산리(道山里)로 행진하였다. 면사무소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광성리와 가송리의 주민들이 호응하여 합류하였다. 면사무소의 뒷산인 응봉산(鷹峰山)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어 다시 한번 한국의 독립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북 소리에 맞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면사무소로 들어가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려 했으나, 면사무소에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이에 시위대를 지휘한 김동하는 “면사무소에 직원이 없는 것은 괘씸한 일이므로 부숴버리자”고 시위대에게 주장하였다. 면사무소를 공격하라는 김동하의 외침을 신호로 김용제·김동완·김용숙·이화춘·한상철·최기석(崔奇石) 등이 돌을 던지며 면사무소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고 호응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 공격에 동참하였다. 돌과 몽둥이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 기물, 문서 등을 파괴하였다. 다음날인 8일 밤에도 11시부터 전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 60여 명과 함께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면사무소를 습격하는 격렬한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은 무력으로 해산시키려고 하여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붙잡혀서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면사무소를 습격한 사실이 확인되어 법원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6월과 벌금 30원 노역장 유치 30일의 처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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