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廉奉善

奉善

1878 ~ 1909.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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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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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재령(載寧)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재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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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8)

관련 사건

  • · 후기의병(황해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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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8)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상방면(上方面) 신촌동(新村洞, 현 재령군 장수면 장국리) 출신이다. 1908년 당시 31세로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성장 과정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의병활동을 시작하는 경위도 확인할 수 없으나 1908~1909년에 재령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1904년 일제는 본격적으로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전쟁을 전개하면서 강제적으로 한국과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군사·외교·재정권 등 일련의 국권을 빼앗았다. 이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로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가속화시켰다. 1907년에 이르러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고, 더불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한국의 내정까지 침범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침탈 행위에 분노하는 애국지사들은 잃은 국권을 되찾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 봉기하여 일본군과 맞서는 데에 나섰다. 황해도 일대는 당시 의병 활동이 왕성하게 발전되는 대표 지역이었다. 곧바로 이러한 시대 분위기 아래 황해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의병활동 중 1908년 5월 18일 일시 투항하기도 했으나, 다시 의병활동에 투신하였다. 1909년 9월 황해도 재령군 우율면(右栗面, 현 북율면) 일대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 모집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에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1909년 12월 27일 평양공소원에서 교(絞)형을 받아 1910년 1월 7일 평양감옥 대흥출장소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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