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선
吳英善1887. 4. 29 ~ 1961. 2.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상해대한인거류민단
- · 통합 한국독립당
- · 한국혁명여성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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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6) 1887년 4월 29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남면(南面) 황방리(篁芳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오영선(吳永善)·오복순(吳福順)이다. 조소앙(趙素昻)과 결혼하였다. 자녀는 조인제(趙仁濟)·조필제(趙弼濟)이다. 조소앙과 결혼 후 일본으로 유학하는 남편 조소앙과 함께 도쿄(東京)로 가서 하숙 생활을 하였다. 이후 남편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34년 6월 상하이에서 상해대한인거류민단(上海大韓人居留民團)에 참여하여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3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거류민단제」를 국무원령(國務院令)으로 공포하고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을 추인하였다.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은 임시의정원 의원을 선출하였고, 임시정부 직속 지방 자치단체이자 수도 행정기관으로서 기능을 담당하였다. 또한, 국민인 거류민단원들은 인구세와 애국금 납부를 통해 임시정부 재정을 뒷받침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이 발발하면서 임시정부에 참여한 각 정당 단체들은 긴급한 통일의 필요성과 임시정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재건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과 미주와 하와이 각 단체들이 연결되어 독립운동연합체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韓國光復運動團體聯合會)를 결성하였다. 이를 토대로 1940년 5월 당시 임시정부가 자리한 중국 쓰촨성(泗川省) 치장현(綦江縣)에서 통합 한국독립당이 출범하였다. 1940년 6월 17일 통합 한국독립당 산하단체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이 창립되었을 때 여기서 참여하였다. 한국혁명여성동맹 구성원들은 독립운동가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의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3월 통합 한국독립당에 참가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이후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다. 6·25전쟁 중 남편이 납북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1961년 2월 8일 오전 2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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