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揆哲
揆哲1895. 6. 15 ~ 1922. 7.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단지동맹결사대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5년 6월 15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대왕면(大旺面) 자곡리(紫谷里, 현 서울특별시 자곡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규상(李揆尙)·이규송(李揆松)이다. 1910년 경술국치 후 부친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만주 안투현(安圖縣)에서 만세시위에 앞장섰으며, 이 무렵 제일국민학교(第一國民學校) 교장을 지냈다. 그 해 7월 황용기(黃龍起) 등과 단지동맹결사대(斷指同盟決死隊·斷指決死隊)에 들어가 자신의 왼손 무명지를 끊어 독립의지를 다짐하였으며, 총무부장·참모장으로 활동하였다. 단지동맹결사대는 대한정의군정사· 대한독립군 등 다른 무장 독립운동단체들과 연대하여 함남 갑산(甲山)·삼수(三水) 및 함북 무산(茂山)의 일본군 헌병대·경찰관서·관공서를 습격하였다. 1919년 9월 안투현 두도구(頭道溝)에서 붙잡혀 이른바 ‘재류금지(在留禁止)’ 명령을 받고 함북 경성(鏡城)으로 돌아왔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에 참여하여, 이상호·전재일(全在一) 등과 석동섭(石東燮)·임정발(林正發)에게 경성군 찬의사(贊議士)와 애국금 모집원 임명 문서 수십 장을 전달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지들과 일제 경찰주재소의 무기를 털어 경찰관서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나남경찰서에 붙잡혔다. 조사를 받는 중에도 일제 경찰과 통역관에게 호통을 치며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1920년 8월 11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출옥을 앞둔 1922년 7월 18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희곤⋮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