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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석

吳仁錫

1889. 6. 1 ~ 1942.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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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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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정주(定州)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정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한인회
  • · 한인민단
  • · 한민회
  • · 천진교민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국민대표회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9년 6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임해면(臨海面) 원하리(元下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오윤석(吳胤錫)이다. 고향인 평안도 정주군(定州郡)과 인근의 선천군(宣川郡)은 일찍부터 기독교·천도교가 강세를 보인 곳으로 신문물이 일찍부터 들어온 곳이었다. 일제가 남긴 기록에 안창호(安昌浩) 계열의 인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계열의 신식교육을 수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중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했던 안둥(安東, 현 丹東)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 가입하여 본부원(本部員)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은 안병찬(安秉瓚)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자금을 제공하고, 기관지 『반도청년(半島靑年報)』를 발간하였다. 1920년 상하이로 건너가 4월 1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內務部) 참사(參事)에 임명되었고, 4월 27일에는 국무원(國務院) 서무국(庶務局) 비서로 옮겨갔다. 그러나 7월 29일 사직하고 텐진(天津) 한인들의 활동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1920년 9월 텐진으로 가서 프랑스 조계 신화리(新華里) 26호에 거주하였다. 1921년 2월 17일에는 텐진에서 활동 중인 박용태와 함께 부진한 활동에 빠진 한인회를 개편하여 한인민단(韓人民團)으로 재조직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21년 3월 26일 박용태가 일제 경찰에 붙잡히면서 한인민단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비슷한 시기 한혈단(韓血團)이라는 단체가 조직되었고, 7월 18일 한혈단이 조직을 개편하고 명칭을 한민회(韓民會)로 바꿀 때 교통부장(交通部長)에 임명되어 텐진과 상하이를 오가며 한민회가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단체로 활동하는데 기여하였다. 당시 임시정부가 외교활동의 일환으로 이승만(李承晩)과 김규식(金奎植)을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의 대표로 파견하기로 결정하자, 산하 기관인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를 중심으로 외교후원회를 설치하고 후원금을 모집하였다. 이때 모인 후원금은 1921년 10월 12일 하와이로 보내졌고, 그 일부는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비로 쓰였다. 이때 『정리(正理)』,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와 조선문제(朝鮮問題)』를 발행하며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선전하였다. 이후 텐진의 한민회는 1921년 12월 17일 임시정부 내무부령 제4호 교민단체 제7조(1920.10.7.)에 따라 천진교민단(天津僑民團)으로 변경되었다. 이때 천진교민단은 임시정부의 개혁을 위안 국민대표회의 개최를 지지하였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하이와 텐진을 오가며 당시 안창호 등과 협의하여 1922년 9월 상하이지역을 대표하는 국민대표회의 출석 위원 12명 선정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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