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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根培

根培

1893. 9. 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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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根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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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강동(江東)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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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농민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1893년 9월 3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원탄면(元灘面) 송오리(松塢里)에서 태어났다. 평민 출신으로 강동군 원탄면 송오리 탄광에서 채탄 작업에 종사하던 중, 1920년 8월 초 이환욱(李桓郁)·이성규(李成奎)·이석돈(李錫暾)·최인택(崔仁澤)·이죽수(李竹水)·박현(朴鉉)·이득형(李得馨)·최의식(崔義植) 등과 함께 농민단(農民團)이라는 항일결사를 조직하였다. 농민단은 군자금을 모집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후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던 중 항일 투쟁의 일환으로 일제 경찰관서를 폭파하기로 하였다. 먼저 강동군 중심지의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같은 군내의 원탄면(元灘面)·고천면(高泉面) 등 경찰관이 주재하는 곳에 폭탄을 던지기로 계획하였다. 농민단 단원 가운데 탄광 광부 출신들이 다수 있었던 관계로 그들이 제조하기 용이한 다이너마이트를 폭탄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1920년 8월 12일경 송오리 탄광에서 채탄 작업에 종사하던 최인택(崔仁澤 이명 李鳳三)에게 의뢰하여 8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한 달 간 다이너마이트 8개, 도화선 약 1,000여 개를 확보하였다. 최인택에게 이 재료를 인계받자, 농민단 단원 이환욱과 함께 우선 길이 약 90㎝, 직경 약 6㎝ 가량의 원통형 추(錘)에 구리선을 위아래로 감아 붙이고 쇠조각을 그 가운데 채워 1개의 폭탄을 제조하였다. 이러한 준비를 마친 뒤, 9월 14일 강동경찰서 폭파에 앞서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 모험부장 주석환(朱錫煥)을 비롯한 이수영(李洙泳)·문창선(文昌善)·서달선(徐達善)·한문기(韓文基) 등과 성천군(成川郡) 대곡면(大谷面)의 주재소(駐在所)를 습격하였다. 대곡면 주재소를 습격한 지 3일 뒤, 강동경찰서 폭파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성규와 폭탄 투척을 협의한 뒤, 9월 17일 직접 제조한 폭탄을 이성규에게 전달하였다. 9월 18일 오후 8시 이성규는 이치모(李致模)와 함께 강동군 강동면 아달리(阿達里)에서 폭탄 투척에 관한 작전을 논의한 직후 9시경 함께 강동경찰서로 향하였다. 이성규가 경찰서의 상황을 정찰하는 사이 이치모는 경찰서 북쪽 모퉁이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접근하여 경찰서 동북부 창밑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이 의거로 일제 경찰 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강동경찰서 폭탄 의거와 군자금 모집과 관련되어 농민단 단원 다수가 1920년 10월 12일 평양경찰서 경찰에게 붙잡혀 11월 6일 검찰에 송치되었다. 이때 이치모·이석돈·최인택·이죽수·이상욱(李相郁)·박제현(朴擠鉉) 등이 붙잡혔으나, 이성규·이환욱·최선식(崔善植)·서달선·정석흥(丁錫興) 등과 함께 체포를 면하였다. 9월 30일 자정 무렵 원탄면 삼청리(三靑里) 이관식(李寬植)의 집에서 임시정부가 파견한 독립단원임을 밝히고 군자금을 확보하였다. 그 해 10월 9일 9시경 정석흥과 함께 원탄면 흑룡리(黑龍里) 서상목(徐相穆)의 집에서 군자금 100원을 모집하였다. 이후에도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국내지단(國內支團)의 기밀과장(機密課長)으로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해 임시정부에 보내는 활동을 지속하였다. 1922년 1월 초 일제는 이들 의거 관련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강동·평양·대동 등 3개 경찰서와 평안남도 경찰부의 경찰병력 100여 명이 연합하여 강동군 일대에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였다. 그 결과 1월 7일 새벽 함께 활동하였던 주석환 등 독립군은 일제 경찰과 일대 총격전을 치르다가 당일 오후 5시경 체포되었다. 주석환 등이 체포된 이후에도 강동경찰서에는 임시 수사본부가 설치되어 관련 인사들을 속속 체포하였다. 이때 강동군 삼등면(三登面) 마탄리(馬灘里)에 은신하고 있던 중, 광복군 특무부 서기 서달선, 기밀과장 조기원(趙基元), 외무부장(外務部長) 이규하(李奎厦) 등과 함께 붙잡혔다. 당시 경찰 조사를 보도한 신문에 의하면 “이 세명은 조선 독립을 위하여 생명이라도 바친다고 호언장담하는 광복군으로서 권총과 탄환, 불온문서를 많이 가졌다”고 하였다. 1922년 4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8년 징역 11년 3월로 감형되었고, 1931년 6월 17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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