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兢宰
兢宰1888. 6. 16 ~ 1951. 1.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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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8년 6월 16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문경읍(聞慶邑) 평천리(平川里)에서 운강(雲岡) 이강년(李康秊)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강년이 1907년 3월 충청북도 제천(堤川)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 해 7월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강년은 전기의병 당시인 1896년 (음)1월 11일 산포수 10여 명을 모은 뒤 가은읍(加恩邑) 도태(道胎)장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 활동 중, 산 속으로 도주하는 안동(安東) 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을 붙잡아 농암(籠巖)장터에서 처단하여 반외세의 기치를 널리 알렸다. 전기의병이 해산된 뒤에는 가족과 함께 단양(丹陽) 금채동(金采洞)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항거하는 의병들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이강년도 1907년 3월 충북 제천에서 다시 일어났다. 이때 아버지를 따라 종사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충북 충주(忠州), 경북 문경, 충북 단양·청풍(淸風), 강원 원주(原州)·횡성(橫城) 등 여러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이강년 의병부대와 함께 1907년 8월 23일 충주성을 공략했지만 실패하였고, 9월 7일 문경읍을 장악하여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일본군 토벌대가 추격해 오면서 같은 해 9월 문경 조령(鳥嶺)·갈평(葛坪)·적성(赤城)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 등을 치렀고, 또 9월과 11월 사이에는 충북·강원·경북지역의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펼쳤다. 1907년 (음)11월 12일, 충북 단양 복상곡(復上谷)전투에서는 큰 타격을 입기도 하였다. 이후 문경지역 전투와 봉화(奉化)지역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거두며 활약하였다. 하지만 1908년 7월 2일 청풍 전투에서 이강년이 부상을 입고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강년이 사형을 받고 형 집행으로 사망하자 형 이승재(李承宰)와 함께 부친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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