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학규
權學圭1886. 1. 2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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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86년 1월 25일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숭인면(崇仁面) 청량리(淸凉里,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주소는 회기리(回基里)였다. 대한제국 시기 군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하자 면직되었다. 1914년부터 동대문 밖에 소재한 출판사에서 『시조월보(時兆月報)』의 인쇄공으로 일하였다고 한다. 『시조월보』는 시조사(時兆社)가 1910년 10월 『세 텬ᄉ·의 긔별』이라는 이름으로 창간한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회지를 1916년부터 개제(改題)한 것이다. 1920년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만세 운동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2월 26일 당시 경성부인성서학원(京城婦人聖書學院) 교사로 활동하고 있던 이동욱(李東旭)을 만났다. 이동욱은 2월 24일 장병준(張柄俊)과 함께 한국의 독립을 달성할 목적으로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장병준은 1919년 3·1운동 당시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에서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던 인사였다. 2월 25일 이동욱은 「대한독립 1주년 기념 축하 경고문」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하였다. 여기에는 “우리 조선인은 어디까지나 작년 3월 1일 독립선언 취지를 모체로 하고, 그 기념일인 3월 1일을 기하여 조선 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남녀 학생은 동맹휴교를 하고, 상가는 폐점하여 일제히 자유 만세를 고창하자”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동욱은 이를 대량으로 인쇄할 목적으로 출판사 인쇄공으로 활동하는 유진상(兪鎭商)을 만났고, 유진상이 함께 인쇄 작업을 해보자고 권유하므로 이에 동참하였다. 독립 만세 운동 취지에 공감하여 2월 26일 자신이 근무하는 인쇄소에서 「대한독립 1주년 기념 축하 경고문」 500장, 27일에는 600장, 28일에는 1,200장을 인쇄하여 이동욱에게 전달하였다. 인쇄된 경고문은 충남과 대구 등지에도 운반되어 한인들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인쇄 작업 직후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죄 처벌령, 출판법, 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200일 본형산입)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후 1921년 4월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져 재차 재판에 넘겨졌다. 조선독립단은 중국 관톈현(寬田縣)에 본부를 두고 1920년부터 한국에 단원을 파견하여 일본과의 일전을 치르는 데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고 있었다. 경기도 고양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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