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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준

禹鳳俊

1883 ~ 1907.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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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우봉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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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자료에 따르면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인산면(麟山面) 시대피동(時大皮洞)에 거주하였다. 1907년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황해도에서는 1907년 군대 강제해산 이후 전 군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이 왕의 밀지를 보내와 유림계 인사 채홍두(蔡洪斗)·변현석(邊玄錫)·정광철(鄭光轍)·박양섭(朴陽燮)·신석(申襫)·우병렬(禹炳烈)·박시재(朴時載)·정형교(鄭亨敎)·신재봉(申在鳳)·오목영(吳穆泳)·채홍구(蔡洪九)·신필수(申弼秀) 등이 기병을 의논한 후 박기섭(朴箕燮)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면서 격문을 돌렸다. 이에 응한 의병 4000~5000명이 모여들었고, 1907년 10월 8일 황해도 평산(平山)의 의병부대 돌격장 김창호(金昌浩) 의병부대가 배천(白川, 현 연백군)군청과 경무분견소를 습격, 파괴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렇듯 의병 전쟁이 황해도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1907년 황해도 서흥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같은 해 11월 12일 유창건(柳昌建) 등 부일활동을 벌이고 있던 일진회원(一進會員)들에게 붙잡혀서 서흥경무분서(瑞興警務分署)에 체류하였고 이후 신계수비대(新溪守備隊)로 이송되는 도중에 탈주를 시도하였지만, 피살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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