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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태룡

邕太龍

1892. 7. 24 ~ 1988.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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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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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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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최산흥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92년 7월 24일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순창면(淳昌面) 순화리(淳化里)에서 태어났다. 본래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9년 최산흥(崔山興) 의병부대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고,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 체결 이후 대한제국 군대까지 해산시켰다. 이 해산 군인들이 을사의병 이후 활발해진 의병부대들에 대거 합류함으로써 의병 활동의 양상은 의병전쟁의 성격이 나타나게 되었다. 1909년 2월 12일 최산흥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최산흥은 원래 순창 출신으로 잡화상(雜貨商)이었다가 1905년 을사늑약을 계기로 의병 활동에 뛰어들어 1906년부터 1909년까지 태인(泰仁)·부안(扶安)·임실(任實)·남원(南原)·진안(鎭安)·용담(龍潭, 현 진안군 용담면) 등 전북지역에서 활발한 의병 투쟁을 벌였다. 처음에는 이경춘(李慶春) 의병부대 소속이었다가 1907년 이석용(李錫庸) 의병부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09년 당시에는 양윤숙(楊允淑) 의병부대에서 중군장을 맡고 있었다. 최산홍 의병장 휘하에서 동료 의병들과 함께 전북 순창군 목과면(木果面) 방축동(防築洞, 현 금과면 방축리) 동장 김석중(金錫仲)으로부터 군자금 100냥을 거둬들이는 등 당시 대규모로 발전한 의병부대를 운영하고 지속적인 의병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1909년 9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을 실시하자, 그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0년 4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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