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치관
玉致官188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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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평안남도 맹산군(孟山郡) 두인면(斗仁面) 송전리(松田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옥치관(玉致寬)이 있고, 자료의 한계로 그 외의 다른 인적 사항은 확인할 수 없다. 충청북도에서 유수만(柳樹萬)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강제 체결 후 대한제국 군대마저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심각한 국권침탈에 분노하여 유수만 의병 휘하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유수만 의병장은 유수만(柳須萬)·유현서(柳鉉西)라는 이명으로 불렸고, 1908년에 의병들을 인솔하여 충청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유수만 휘하에서 김화서(金化西)·김용운(金用云)·김재홍(金在弘) 등 동지들과 함께 1908년 6월에 문의군(文義郡) 삼도면(三道面) 상외리(上外里, 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부용외천리)에서 금 2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이재향(李在向)·문기복(文其卜) 등 의병들과 함께 문의군 동면(東面, 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와 동군 광대암(廣大岩, 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혔다. 1909년 2월 17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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